고성능차에 집중하던 재규어가 SUV 바람에 동참한 건 'F-페이스'가 시작이다. 세단과 쿠페만 만들던 재규어가 SUV시장에 뛰어든다는 소식은 그리 의아하진 않았다. SUV 인기는 세계적 흐름이고, 대중 브랜드부터 럭셔리급까지 SUV를 개발하지 않는 브랜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재규어는 지난 2015년 프랑크푸르트모터쇼를 통해 F-페이스를 선보였고 이듬해 판매를 시작했다.

초반엔 같은 그룹 내에서 SUV 포지션을 전담하는 랜드로버와 간섭효과가 우려됐다. 그러나 특유의 존재감을 바탕으로 랜드로버 SUV 개발 노하우를 흡수하면서 재규어만의 색깔을 입히는 데 성공했다. 출시 첫 해 F-페이스는 재규어 역사상 단기간에 가장 많이 판 차로 기록됐고, 이를 통해 '재규어 SUV'에 대한 기우를 깨끗이 씻어냈다.


F-페이스의 성공을 바탕으로 재규어는 좀 더 작은 크기의 SUV에 도전했다. 주로 아웃도어용으로 쓰던 SUV가 점차 도심용으로 확대되면서 컴팩트 SUV의 수요가 급증해서다. 그렇게 태어난 E-페이스는 F-페이스의 '퍼포먼스 SUV'라는 컨셉트를 계승하면서 작은 차체와 적절한 실용성, 타협 가능한 가격을 갖춰 재규어 SUV의 저변을 넓히는 데 나섰다. 과연 SUV로 느끼는 재규어의 감성은 어떨까. E-페이스 P250 R다이내믹 SE를 시승했다.

▲디자인
차체가 작아 F-페이스의 유연함을 완벽히 재현하긴 어렵지만 전반적인 비율이 상당히 안정적이다. 길이 4,395㎜, 너비 1,900㎜, 높이 1,638㎜, 휠베이스 2,681㎜로 길이에 비해 폭이 넓어 무게중심이 전반적으로 낮게 깔린 까닭이다. 차체 크기를 비교하면 현대자동차 소형 SUV인 코나보다 크고 준중형 SUV인 투싼에 가까운 편이다. 수입차 중에서는 BMW X2, 아우디 Q3, 벤츠 GLA 등과 견준다.


앞모양은 여느 재규어와 같이 J자형 주간주행등과 허니콤 매시그릴의 조합이다. 어디서 보더라도 재규어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R다이내믹 트림부터는 차체 아래에 SUV 특유의 검은색 가드 대신 차체와 동일한 색상과 소재의 디자인을 적용한다. 또 큼지막한 에어인테이크와 그 아래 안개등이 위치한다. 보닛 위를 흐르는 파워돔은 작은 차의 볼륨감을 살려 멋스럽다.


E-페이스의 디자인 하일라이트는 측면과 후면이란 생각이 든다. 여러 디자인 요소들이 섞여 있으면서도 부담되지 않고 세련됐다. 보닛에서 시작해 측면을 흐르다가 살짝 어깨 높이를 올려 후면으로 빠지는 숄더라인은 물론 도어 아래를 칼로 베어내듯 한 디자인도 인상적이다. 쿠페형 실루엣을 따른 측면 유리창은 작은 차체의 단점을 보완하고 날렵한 인상을 준다. 리어 스포일러와 트렁크리드, 그 아래 범퍼로 이어지는 굴곡도 재미있다. 어느 하나 단조로운 게 없다. 특히 F-타입에서 따온 리어 램프는 앞모양뿐 아니라 뒷모양에서도 재규어 라인임을 드러내는 시도다.


실내는 스포츠카인 F-타입을 참고했다. 센터페시아와 센터콘솔의 전반적인 구성이 유사하다. 맨 위 공조기를 시작으로 그 아래 터치 가능한 멀티미디어창, 동그란 형상의 공조버튼, 기어봉 형태의 변속기 그리고 운전석을 감싸는 듯한 그랩 핸들 등을 갖췄다. 계기판은 디지털 방식으로 드라이브 모드에 따라 다양한 조명색으로 바뀌고, 가운데 위치한 트립 모드는 각종 운전자보조 시스템과 안전 시스템 정보를 자세히 표시한다.


실내외 곳곳에는 재규어 디자인의 위트가 느껴지는 요소들이 있다. 운전석 앞쪽 유리창에는 어미 재규어와 아기 재규어가 나란히 걸어가는 그림이 있고, 이 그림은 퍼스트 에디션 트림에서 발 밑을 비추는 도어 로고등으로 쓰인다. 또 센터페시아 안쪽 수납공간에는 재규어 레오파드 무늬를 칠해 예상치 못한 재미를 준다.


시트는 버킷 타입이지만 넉넉한 편이다. 단단히 잡아준다는 느낌보다 편안함에 방점을 둔 듯하다. 시트와 도어트림, 대시보드 곳곳에 가죽을 사용해 안락함을 강조하고, 스티어링 휠과 센터페시아는 무광 블랙 패널과 크롬을 적절히 조합했다. 스티어링 휠은 물론 기어봉, 도어 손잡이 등 손에 잡히는 대부분의 요소에 가죽을 사용해 촉감을 만족시킨다.


실내 공간은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주로 이용하는 운전석은 물론 2열도 여유로운 5인승으로 활용 가능하다. 트렁크 용량은 484ℓ로 2열을 완전히 접으면 1,141ℓ까지 늘어난다. 뒷좌석에 카시트를 하나 장착하고 트렁크에 유모차와 아이짐을 넣고도 충분할 크기다.


▲성능
동력계는 2.0ℓ 가솔린 터보 엔진을 얹고 9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했다. 이를 통해 최고 249마력, 최대 37.2㎏·m의 성능을 발휘하며 ℓ당 복합효율은 9.0㎞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시간은 7.0초, 구동방식은 4륜구동이며 앞바퀴는 스트럿, 뒷바퀴는 인테그럴 멀티링크 서스펜션을 장착했다. 타이어는 19인치다.


E-페이스를 타본 첫 소감은 상당히 의외였다. 재규어 세단의 인제니움 엔진을 경험해보긴 했지만 비슷한 느낌을 SUV에서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치 않아서다. 하지만 E-페이스는 작고 낮게 깔린 차체 덕분인지 SUV 특유의 단점을 느끼기 어려웠다. 오히려 생각보다 하체가 단단하고 조향감이 묵직해 달리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어설프게 낭창낭창한 바운스를 주는 SUV와 다르게 보다 섬세한 세팅이 돋보였다.


초반 가속은 산뜻하게 치고 나가는 느낌이 아니다. 그러나 지긋이 속력을 뽑아내면서도 아직 남아 있는 힘이 충분하다고 포효하듯 언제든 시원스럽게 달려나간다. 속도는 한계를 모르고 오르다가 안전최고속도에 못미쳐 살짝 힘이 빠진다.

코너링은 꽤 재미있다. 안정감있게 뒤쪽이 따라붙으면서 돌아나간다. 급격한 코너링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도로에서도 차체가 즉각 대응해 불안감이 거의 들지 않는다. 제동력은 달리는 것보다 서는 성능에 점수를 더 많이 주고 싶을 정도로 정확하다. 민첩하면서도 완벽한 제동으로 운전재미를 더하면서도 안전에 대한 확신을 준다.


편의·안전품목 중에서는 차선유지보조의 작동이 가장 적극적으로 감지됐다.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꾸려면 완강하게 막아선다. 사이드 미러에 표시되는 후측방 경고와 후방 카메라도 유용하다. 특히 후방카메라는 시야각이 넓고 화질이 깨끗하다.

이 밖에 크루즈컨트롤, 운전자 상태 모니터링 등의 기능이 있으며, 주차보조팩을 선택할 수 있다. 주차보조팩은 직각 및 평행주차뿐 아니라 출차도 가능하다.


도심형이긴 하지만 AWD를 비롯해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 오르막길 주행보조장치 등 야외에서 필요한 기능들도 고루 갖췄다.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기회는 없었지만 온·오프로드를 넘나드는 다용도 SUV라면 꽤 도움이 될 법하다.


▲총평
'첫 술에 배부르랴'라는 속담도 있지만 재규어에게는 예외인 듯하다. 재규어가 추구한 고성능과 SUV의 융합을 F-페이스에서 완벽히 구현했고, 여기에 실용성을 더한 E-페이스까지 성공적으로 출시해서다. 그 동안 재규어가 모터스포츠를 통해 쌓아 온 고성능에 대한 노하우와 형제 브랜드인 랜드로버의 SUV 기술 결정체가 조화를 이룬 덕분이다. 누구든 경험해보면 수많은 SUV 중 E-페이스를 선택해야 할 가치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R다이내믹 SE의 판매가격은 6,470만 원이다.






오아름 기자 or@autotimes.co.kr
사진=구기성 기자 kksstudio@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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