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수유 하실 거예요?"

누구도 내게 이런 선택권 따위 주지 않았다.

산고 끝의 첫 출산. 다들 아프다, 힘들다 했지만 겪어보기 전엔 그 정도를 몰랐기에 멘탈은 붕괴되고 말았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그나마 임산부 3대 굴욕이라 불리는 다양한 경험을 할 땐 진통 중이라 체면 따질 경황이 없었는데 겨우 숨돌릴 만 해지자 간호사는 내 앞섶을 거침없이 풀어헤치더니 가슴을 이리저리 주무르고 내가 낳은 작은 인간의 입을 갖다 댔다.

'으잉 이게 뭐야?'

당혹스럽고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 여자에서 엄마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간호사의 가슴 침탈은 모유수유 전쟁의 서막에 불과했다.

누구도 내 회복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가 잘 먹는지 모유는 잘 나오는지 모든 관심은 아이에게 옮겨갔다.

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작은 인간 1호 엄마로서의 역할에 점점 빠져들었다.

너무 작아서 안기도 조심스러운 아이의 생존에 내가 밀접하게 연결됐다는 사명감에 불타 매끼 대야만 한 그릇에 가득 나오는 미역국을 들이키고 모유수유에 몰입했다.

퇴원 후 찾은 조리원은 그야말로 모유 전투장이었다.

산모의 조리를 위한 곳이라기보다는 신생아 수유 지원센터나 다름없었다.

모유수유 지도사는 매일 자세 교정과 마사지로 내가 더 많은 모유를 제공할 수 있도록 도왔다.

매일 몇 그램씩 아이 체중이 늘었는지 적힌 종이를 성적표처럼 받아들어야 했다.

낮잠을 자려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수유시간 전화에 충실하다 보니 조리원의 꿀휴식 따위는 내게 없었다.

새벽 수유를 안 하면 분유 수유를 한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 "밤에도 배고파 하면 깨워주세요"라 했고 새벽에도 두세 시간 간격으로 전화벨만 울리면 수유실로 내려가 젖을 물리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새벽 세시고 네 시고 수유실엔 그렇게 좀비 같은 산모들이 집합해 있었다.

'완모(순전히 모유로만 수유하는 것)'를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고 그게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돼 다른 의심은 전혀 하지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유량은 풍족(?) 해서 다른 산모들의 부러움을 샀고 집에 와서도 밤낮 없는 모유 전쟁은 이어졌다.

모유를 먹인다는 이유로 아이가 울 땐 무조건 내가 아이를 안고 돌봐야 하는 점은 단점이었다.

아이는 쑥쑥 자라났지만 모유량이 많다 보니 두 시간 외출하는 것도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몸살에 걸린 듯 열이 펄펄 나던 날 병원에서 유선염 진단을 받았다.
옷을 벗어젖히고 연고를 바르고 누웠는데 옆에서 아이가 울어대면 자동반사처럼 흐르는 젖은 왜 이리 비극적인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다 보면 내가 인간인지 포유동물인지 분간이 가지 않아 세상 우울하기만 하다.

직장 복귀를 위해 7개월이 됐을 때 모유수유를 급히 중단했고 고생은 끝났다는 기쁨도 잠시.

완모의 사명감을 불태우느라 수유 이후의 내 자태(?)에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탓일까.

D컵까지 커졌던 가슴은 온 데 간 데 흔적조차 없어졌다.

'다 어디로 갔니'

달라진 내 모습에 상실감이 몰려왔다.

속옷을 전부 버리고 다시 장만해야 할 정도로 내 라인은 달라져 있었고 패드 속옷 따위 쳐다보지도 않던 내가 2.5센티 패드가 숨어있단 쇼호스트의 말에 나도 모르게 결제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예전엔 가슴 모양 망가질까 모유 수유 꺼리는 엄마들이 있단 얘기 들으면 막연히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망가지면 얼마나 망가진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내가 겪어보니 '이거 장난이 아닌데? 이 정도일 줄 알았으면 나도 심각하게 고민해보는 건데'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와중에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

모유수유가 아이에게 좋단 건 잘 알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겪어보니 더럭 겁이 났다. 모유 수유는 엄마에게 무조건 강요할 사안은 아니다.

그건 정말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위대한 희생이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출산 고통보다 아프다고 표현하기도 하는 유선염의 아픈 기억도 떠올라 진저리가 쳐졌다.

둘째 아이는 고민 없이 모유를 약 한 달 먹이고 혼합수유로 돌입했다. 모유량을 급속히 늘게 한다는 밤중 수유도 한 달부터는 분유 수유로 교체했다.

첫째 아이 땐 밤이고 낮이고 모유수유의 노예가 되느라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그 짓(?)을 또 리플레이하고 싶진 않았다. 내 품에 안겨 배불리 먹다 녹다운돼 잠든 아이는 늘 사랑스러웠지만 유선염일 때 수유를 중단하면 안 된다는 말에 살이 찢어지는 고통 속 울면서 젖을 물리면서 나는 얼마나 우울했던가.

다시 찾은 조리원에서 난 다른 엄마가 돼 있었다.

낮엔 수유 호출 전화에 충실했지만 밤 12시가 되면 "아침 8시에 깨워주시고 그동안은 분유 보충해주세요"라 당당히 말하고 푹 잠을 잤다.

내 몸이 좋아져야 집에 가서 두 아이 육아 전투에 임할 수 있을테니.

우울한 모유수유 < 행복한 혼합수유

엄마의 행복한 기분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터이니 난 조금도 미안해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물론 모유를 먹이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되는 경우도 있고 분유를 거부하는 아이도 있어서 모든 계획은 엄마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말해둔다.

출산 후 5개월도 안돼 복직하게 됐지만 모유를 일찍 뗀 덕에 힘든 점은 없었다.

일부 열성 엄마들은 회사에서도 유축을 해서 먹인다는데 난 대신 더 안아주고 눈 마주쳐주며 사랑해 주면 된다 생각하리라.

아직까지는 완모했던 큰 아이 잔병치레가 많은 건 기분 탓이겠지.

모유를 먹이는 건 신성한 엄마로서의 권리며 특권이니 이래라저래라, 이게 옳다 나쁘다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라 한다면 난 전보다는 좀 더 이기적인 엄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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