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유상증자 수리는 잘못"
3000억 요구 중재의향서 제출

쉰들러 vs 현대 7년 갈등
정부로 'ISD 불똥'

쉰들러, 현대에 5건 소송
"유상증자 허가는 불법"
금융당국으로 화살 돌려

스위스의 세계 2위 승강기제조회사 쉰들러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3000억원 규모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하기 위한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 올 들어 지난 4월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 6월 메이슨, 이달 초 재미 동포 서모씨가 ISD를 제기한 데 이어 네 번째다.

19일 정부 관계자는 “쉰들러가 3월부터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를 위한 분쟁협의를 요청했고 최근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며 “정부도 대응할 법률회사(로펌)를 선정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법무부가 소송을 주도하고 금융위원회가 소송 자료 수집을 맡기로 역할을 분담했다.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5.87%를 보유해 2대주주인 쉰들러는 현대그룹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한 유상증자를 문제 삼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유상증자가 ‘경영권 방어’ 목적인데도 불구하고 금융감독원이 이를 수리해준 것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유상증자는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며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현대엘리베이터 1대주주와 쉰들러 간 협의를 통해 ISD로 이어지지 않길 희망하고 있다. 2012년 론스타가 제기한 5조3000억원 규모의 ISD 등 패소 가능성에 따른 국가 배상금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쉰들러는 한국과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간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중재의향서 제출 후 최대 6개월간의 협상기간을 거친 뒤 ISD를 제기할 수 있다.

쉰들러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추진 배경엔 2011년부터 7년간 이어져온 현대그룹과의 갈등이 있다. 쉰들러는 그동안 다섯 건의 소송을 현대그룹에 제기했고 현재 한 건이 진행 중이다.
쉰들러는 2004년 당시 경영난에 허덕이던 현대그룹에 ‘백기사’ 역할을 자처하며 국내 1위 승강기업체인 현대엘리베이터에 투자를 시작했다. 지분을 꾸준히 늘려 지분율을 2014년 34%까지 확대했다.

그러나 2011년부터 양사 간 관계가 삐걱대기 시작했다. 쉰들러가 2011년 경영 정보를 취득하기 위해 ‘이사회의사록 열람 허가신청’ 및 ‘회계장부 열람 가처분신청’ 등의 소송을 제기하면서부터다. 재계에선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13년엔 현대엘리베이터의 969억원 규모 유상증자가 “지배주주(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그룹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주주배정 방식이 아니라 일반공모 방식으로 진행돼 부당하다”며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하지만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은 “일반공모 증자는 법령에 위반되지 않으며, 현저히 불공정한 발행에 해당하지 않아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이후 2014년 1900억원, 2015년 2700억원 규모로 진행한 유상증자에서도 2대 주주로서 반대표를 던졌다. 이는 이번에 ISD를 제기한 불씨가 됐다. 쉰들러 관계자는 “법률상 유상증자는 회사의 신규사업과 회사 운영자금을 목적으로 해야 하지만 2013~2015년 유상증자는 ‘경영권 강화’가 목적이었다”며 당시 유상증자에 제동을 걸지 못한 금융감독원에 화살을 돌렸다.

쉰들러는 2014년엔 현정은 회장 등 경영진을 상대로 7180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경영진이 무리하게 투자한 현대상선 기초자산 파생상품으로 인해 회사와 주주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6년 8월 수원지법은 쉰들러에 패소 판결을 내렸고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정부는 론스타가 제기한 5조3000억원 규모의 ISD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높은 데다 올 들어 엘리엇과 메이슨이 제기한 1조원 규모의 ISD까지 겹치면서 배상금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세계 3위 엘리베이터 시장인 한국에서 승강기 영업을 확대하려는 쉰들러도 ISD 제기를 통해 정부와 등을 지기보다 현대엘리베이터와 타협점을 찾을 것이란 분석도 많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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