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순호 동구밭팩토리 대표

고교 졸업한 성인 발달장애인들
카페·제과점서 취업 후 적응 못해
'사회성 길러줘야겠다' 생각했죠

장애인과 비장애인 1 대 1 매칭
텃밭서 함께 일하며 협동정신 길러
수확한 작물로 천연비누 생산

마리몬드·라인프렌즈와 협업
10여명 고용…연매출 5억 기대

소셜벤처 ‘동구밭’의 텃밭에서 도시농부들이 땅을 일구고 있다. /동구밭팩토리 제공

토요일 오전 9시30분. 매주 이 시간이면 서울과 경기 지역 22개 텃밭에 하나둘씩 모여든다. 젊은 도시농부들이다. 22곳에 흩어져 농사짓는 이들을 다 합치면 400여 명. 한 텃밭에서 20명가량의 팀원이 힘을 합쳐 농사를 짓는다. 무엇을 심을지부터 농부들이 상의해 결정한다.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물과 비료를 주고, 수확까지 한다. 이렇게 얻은 채소는 비빔밥 파티를 열어 먹기도 하고, 장터에 가지고 나가 팔기도 한다.

이 텃밭 활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재배나 수확, 판매가 아니다. ‘친해지기’다. 같이 텃밭을 가꾸는 동료와 얘기하고 일하며 친구가 되는 게 이 텃밭의 진짜 목표다. 성인 발달장애인들의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한 소셜벤처기업 ‘동구밭’ 스토리다. 일종의 치유 농업이다.

2014년 설립된 이 회사는 텃밭으로 인연을 맺은 발달장애인 10여 명을 고용, 천연비누를 제조하고 있다. 상추 케일 가지 등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를 넣어 만든 채소 비누다. 하루 생산량은 5000개에 달한다. 노순호 동구밭팩토리 대표를 만났다.

▶동구밭은 어떻게 세우게 됐습니까.

“출발은 단순했어요. ‘성인 발달장애인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해보자.’ 발달장애인 중 상당수는 고교를 졸업하면 갈 곳이 없어요. 많은 발달장애인이 바리스타나 제과제빵사 자격증을 따서 카페에서 일을 시작합니다. 문제는 오래 일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사회 적응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금방 그만두게 되죠. 이 문제를 고민하다가 도시농업을 떠올렸습니다.”

▶왜 도시농업인가요.

“처음에는 발달장애인들이 도심에서 농사를 지어서 꾸준한 수익을 얻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서울 강동구에 작은 텃밭을 빌려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틀렸다는 사실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어요. 도시 텃밭 수준으로는 먹고살 정도로 돈을 버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사실 활동을 하면 할수록 적자가 늘어났어요.”

▶수익이 나지 않았군요.

“네. 하지만 돈은 못 벌어도 얻은 게 있었어요. 친구였어요. 저희가 강동구에서 텃밭 활동을 할 때 한 주도 빠지지 않고 활동에 참여했던 발달장애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농사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는데, 매주 신나게 텃밭에 오는 거예요. 나중에 알았죠. 그가 사귄 유일한 친구가 저였다는 걸. 성인 발달장애인 3명 중 2명은 친구가 없습니다. 발달장애인 사이에선 비장애인 친구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랑거리예요. 부모님들 반응이 가장 먼저 왔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이 텃밭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예전보다 자신감이 붙고 자존감이 높아졌다는 반응이었어요.”
▶일자리 대신 사회성을 키우는 일이 된 셈이네요.

“발달장애인 부모님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고, ‘우리 지역에서도 우리 애들이랑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쏟아졌어요. 그래서 이걸 서비스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서울 전역에 텃밭을 조성하고,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을 1 대 1로 매칭시켰습니다. 한 텃밭에 20명이 팀이 돼서 봄 농사, 가을 농사를 짓는 서비스를 생각했고 지금에 이르게 됐어요.”

▶비누는 어떻게 생산하게 됐습니까.

“텃밭 활동이 길어지면서 고민이 생겼어요. 2~3년씩 활동에 참여하는 발달장애인이 있는데, 아까 말했듯이 텃밭에서 돈을 벌기는 힘들어요. 지속가능한 고용 모델을 창출하려면 텃밭 이상의 것이 필요했습니다. 처음부터 비누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원래는 식물공장, 즉 수경재배 모델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식물공장은 상당한 투자가 필요했어요. 큰 자본 투자 없이 시작할 수 있고 유통기한이 긴 상품을 생각하다가 비누가 나온 겁니다.”

▶비누 사업이 상당히 빠르게 성장했네요.

“천연비누라는 데서 경쟁력을 찾았어요.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지금 같은 성장세라면 올해 매출이 5억~6억원은 나올 것 같습니다. 마리몬드와 라인 프렌즈와도 협업했고요. 매출이 400만원 발생할 때마다 한 명의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방식이에요.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10여 명의 장애인 직원은 모두 텃밭 활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입니다. 텃밭에서 사람과 부대끼고, 우리와도 친해지면서 어느 정도 사회 적응능력을 키운 분들이죠. 비장애인 사원들도 상당수가 텃밭활동에 참여했어요.”

▶텃밭과 비누사업이 연결되는 거네요.

“네. 우리 사업의 전체적인 밸류체인을 봤을 때 텃밭은 근본이 되는 부분입니다.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를 가지고 자체 브랜드인 가꿈비누를 만들고 있기도 하고, 계속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인력풀도 필요하고요. 텃밭 활동이 직접적으로 돈은 안 되지만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FARM 고은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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