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와 민주주의
배철현의 그리스 비극 읽기 (9) 폭력(暴力)

프랑스 화가 폴 조셉 블랑(1846~1904)의 ‘라이오스를 살해하는 오이디푸스’.

유인원이었던 인간이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획득한 시기는 약 350만 년 전이다. 오늘날 동아프리카에 거주하던 일부 유인원이 네 발로 걷는 짐승에서 시작해 두 발로 걷는, 소위 ‘이족보행’하는 유인원으로 진화했다.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즉 ‘직립원인’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네 발로 걷고 뛰는 짐승들과 비교해 힘이나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인간은 힘과 속도를 보완하고 자신을 다른 짐승이나 인간으로부터 보호할 도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손으로 제작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주위 환경을 오래 관찰하고, 자신이 관찰한 대상의 움직임을 미리 예상하는 ‘거울신경계’를 뇌 안에 장착했다. 일부 호모 에렉투스는 사방에 널려 있는 돌을 ‘돌’로만 보지 않고 동물 사냥에 필요한 ‘무기’로 봤다. 이들이 바로 ‘호모 파베르(homo faber)’ 즉 ‘공작인’이다. 그들이 동물을 사냥하거나 바르기 위해 만든 손도끼는 후에 막대에 장착해 창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호모 파베르는 동시에 동물뿐 아니라 다른 인간을 죽이는 ‘호모 네칸스(homo necans)’ 즉 ‘살해하는 인간’이 됐다.

진술(陳述)

테베 왕 오이디푸스와 왕비 이오카스테는 선왕 라이오스가 어떻게 죽었는지 자세히 복기한다. 과거에 대한 자세한 기억과 정확한 진술은 진실을 밝혀주는 토대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오이디푸스를 살인자라고 폭로하자, 오이디푸스는 그 사실을 완강히 거부한다. 상대방의 진술을 인정하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에게, 그 진술은 진위를 떠나 항상 거짓이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코린토스를 떠나 테베에 정착해 왕이 됐기 때문에 자신이 라이오스의 살해자가 될 수 없다고 단정했다. 이오카스테도 남편 라이오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태어나자마자 두 발을 꽁꽁 묶어 들짐승의 먹이가 되도록 야산에 버렸기 때문에 현재 남편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이오카스테와 오이디푸스는 대화한다. 대화는 상대방과의 소통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는 연습이다. 이오카스테는 라이오스가 받은 신탁의 내용을 알려준다. “그이(라이오스)와 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의 손에 그이가 죽게 되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남편 라이오스는 마차를 타고 가다가 세 길이 만나는 곳에서 어느 날 도둑들의 손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태어난 지 사흘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라이오스가 아이의 두 발을 함께 묶은 뒤 하인을 시켜 인적이 없는 산에 내다 버렸습니다.”(711~719행)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의 진술을 들은 후, 자신이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진실일 수 있다는 개연성에 그 진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테베로 오기 전, 어떤 장소에서 낯선 자를 살해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이오카스테에게 그 장소가 어디인지 묻는다. 그러자 그녀는 “포키스라는 장소이며 델포이에서 오는 길과 다올리아에서 오는 길이 서로 만나는 지점입니다”(733~734행)라고 답한다. 아, 그 장소는 오이디푸스가 낯선 자를 살해한 장소가 아닌가. 오이디푸스는 이제 라이오스의 생김새를 캐묻는다. 그녀는 말한다. “키가 큰 편이었고, 흰 머리가 나기 시작했으며, 생김새는 당신과 별로 다르지 않았어요.”(741~742행) 오이디푸스는 불길한 운명을 직감한다. 자신이 살해한 그자와 겉모습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는 외친다. “아아, 가련한 내 신세.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나 자신에게 끔찍한 저주를 퍼부었구나!”(745~754행)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정체성과 운명을 밝히려는 구도자처럼 좀 더 객관적이며 확실한 증거를 원한다. 이오카스테의 진술은 라이오스가 살해됐을 때 그를 호위하던 한 하인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다. 라이오스는 다섯 명의 호위병만 거느린 채 행차하던 중이었다. 그들 모두가 죽고, 하인 한 명만 살아남았다. 이오카스테는 하인에 대해 말한다. “그 하인은 그곳에서 돌아온 뒤 당신(오이디푸스)이 권력을 쥐고 라이오스가 죽은 것을 보고는 내 손을 잡으며 이 도시에서 보이지 않는, 되도록 멀리 떨어져 있는 들판으로 보내달라고 간청했어요.”(758~763행) 오이디푸스는 이제 자신의 불운을 깨닫기 시작한다. 이오카스테와의 대화를 통해 그 살인자가 바로 자신일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인다.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에서 왕자로 태어나 호의호식하다가 이상한 소문을 듣고 자신의 정체성을 캐기 위해 퓌토(델포이의 옛 지명)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신탁을 들었다고 말한다. “나는 내 어머니와 살을 섞을 운명이고, 사람들에게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자식들을 보여주게 될 것이며, 나를 낳아준 아버지를 죽이게 될 것이다.”(791~793행)
반전(反轉)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은 치명적이고 운명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이 결함을 고대 그리스어로 ‘하마르티아(hamartia)’라고 불렀다. 주인공은 비극적으로 자신이 이 결함을 지니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그 주위 사람들이나 비극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은 이 결함을 명료하게 알고 있다. 하마르티아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지 못하는 무식(無識)이며 알더라도 그 길에 들어서지 않으려는 태만(怠慢)이자 오만(傲慢)이다. 그 길에 들어선다는 것은 어렵고 이상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하마르티아는 원래 ‘궁수의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지 못하고 빗나가다’라는 의미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있다. 그(녀)는 그 길을 찾지 못해 갈림길이나 세 갈래 길에서 실수를 저지른다. 하마르티아라는 단어는 후대에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에서 미신(迷信)이 아니라 종교(宗敎)로 등장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도 바울에 의해 ‘죄(罪)’로 번역됐다. 죄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상태다.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의 진술을 듣고 점점 자신의 과오인 하마르티아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내가 헤매다가 세 길이 만나는 곳에 이르렀을 때 나는 전령과 망아지들이 끄는 마차와 마주쳤지. 마차에는 당신이 말하는 것과 같은 남자가 타고 있었지. 그러다 그 길잡이와 노인이 나를 억지로 밖으로 밀어내려고 했었지.(…) 이것을 본 노인이 내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마차에서 끝에 ‘침이 둘 박힌 막대기’로 내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지. 그래서 내 손이 내 막대기를 휘어잡고 그를 세게 내리쳤지. 내가 너무 강하고 빠르게 쳐서 그는 피할 수 없었지. 그는 마차에서 튕겨져 나와 머리를 위로 한 채 땅에 떨어졌지. 내가 그들을 죽였지. 그들 모두를 죽였어. 나는 아직도 그들을 생생하게 보는 것처럼 기억하지.”(801~813행)

막대기

오이디푸스는 태어나자마자 두 발이 묶여 정상적으로 걸을 수가 없어 ‘막대기’에 의지해 걷는다. 그는 이 막대기로 자신의 아버지인 라이오스를 살해하고 테베의 왕이 됐다. 막대기는 오이디푸스에게 왕권을 가져다 주는 선물이자,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도구다. ‘왕홀(王笏)’을 의미하는 ‘스켑터(scepter)’는 막대기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스케프트론(skptron)’에서 파생했다. 오이디푸스가 손에 쥔 막대기는 인간 문명의 모호함을 담고 있다. 막대기는 인간의 권력이자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무기가 된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문명 속의 불만》이란 책에서 “인간은 인위적인 다리(막대기, 도구, 혹은 무기)를 통해 신이 됐다. 인간은 부수적인 기관을 장착해 격조 높은 대상이 됐지만, 동시에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고 했다. 오이디푸스는 막대기를 쥐고 테베에 역병을 가져온 스핑크스를 물리치고, 자신의 길을 방해하는 라이오스를 살해했다. 이 막대기가 왕홀이 됐다. 그러나 이 막대기가 인간과 짐승을 구별하는 가족이란 구조의 근간을 허무는 단초가 됐다. 그는 왕이 돼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해 자식을 낳는, 도시문명의 문법인 관습과 도덕을 부수는 근친상간(近親相姦)을 범했다. 오이디푸스는 절규한다. “나는 내가 죽인 사람(라이오스)의 침대를 그를 죽였던 이 두 손으로 더럽히고 있다. 나야말로 사악하다. 나는 또한 불결하다. 나는 추방돼야 하고 추방자로서 내 가족을 만나서도 안 되고 내 조국에 발을 들여놓아도 안 된다.”(820~825행)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손에 들린 막대기를 통해 왕이 됐다. 그러나 그 막대기는 인간을 다른 짐승들과는 달리 인간답게 만드는 ‘식구들 간의 지켜야 할 예절과 금기’를 어김으로써 도시라는 유기체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도록 ‘오염’시켰다. 땅, 동물, 그리고 여인이 각각 상징하는 농경정착문화, 사육, 그리고 가족은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는 불모와 불임 상태로 전락했다. 테베 왕가의 근친상간은 도시의 질서를 파괴해 역병과 비생산을 초래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살해한 라이오스의 살아남은 하인을 만나 자신의 운명을 확인할 것이다. 그는 무엇을 깨달을 것인가?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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