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를로스 폼프 담당관-황라열 힐스톤파트너스 대표 대담
"민간 주도 바톰업 방식이 네덜란드 블록체인 정책 핵심"

마를로스 폼프 담당관(왼쪽)과 황라열 대표.

정부가 최근 ‘블록체인 기술 발전전략’ 발표에 이어 가상화폐(암호화폐) 관련 법제화도 추진하고 나섰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블록체인 분야에서 뒤처지면 곤란하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당국 역할이 규제와 진흥 사이의 어느 정도 선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참고로 삼을 만한 나라가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는 지난 2016년부터 정부와 민간이 손잡고 실생활과 밀접한 다양한 공공분야 블록체인 시범(파일럿)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당초 3개 프로젝트로 시작해 보험, 물류, 사회복지서비스 등 35개로 늘어났다. 우수한 성과를 거둔 파일럿 프로그램을 추려내 내년부터는 국가 시범사업으로 지정해 진행할 예정이다.

이들 파일럿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마를로스 폼프 네덜란드 블록체인 담당관이 최근 방한했다. 정부 관계자가 아닌 민간 출신으로 공공과 민간에서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균형감 있게 평가할 수 있는 인물이다. 폼프 담당관(이하 폼프) 인터뷰는 황라열 힐스톤 파트너스 대표(이하 황)와의 대담으로 진행됐다.

▶황=네덜란드 정부가 블록체인 사업에 관심을 갖고 적극 추진한 배경이 궁금하다. 대한민국은 이제야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네덜란드의 경우 어떻게 시작됐나.

▶폼프=저는 네덜란드 정부 관료들 대상으로 인공지능(AI)과 로봇공학, 블록체인 등 신기술을 교육하는 역할을 해왔다. 초기에는 관료들이 블록체인 개념과 실무 적용 등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블록체인을 활용한 파일럿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개념을 익히고 습득하기를 제안했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배경이다.

▶황=당신이 블록체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뭔가.

▶폼프=원래 신기술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블록체인뿐 아니라 AI, 로봇공학 등도 마찬가지다. 각종 뉴스를 접하고 논문을 읽으며 관심이 커졌다. 미국에서 열린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기도 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정보를 얻고 배우고 있지만 아직도 블록체인에 대해서는 배워나갈 점이 많다. 파일럿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현장에서 익힌 것들도 여럿이다.

▶황=개인적 관심을 정부 정책으로까지 발전시키려면 굉장히 힘든 과정을 거쳤을 것 같다. 블록체인 기술의 효용성을 설명하고 왜 정부가 나서야 하는지 설득했을 텐데 어떻게 했나.

▶폼프=조금 다르다. 정부에 효용성을 설명하거나 설득하면서 시작된 건 아니다. 앞서 말했듯 고위 관료들 대상으로 블록체인을 교육하던 중에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됐다. 사업 추진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닌 블록체인 체험교육의 연장선인 셈이다. 초기에는 관료들이 블록체인을 잘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신기술의 학습 필요성에 대해서는 열려 있었다. 관료들의 정보기술(IT) 교육을 장려하는 네덜란드 정부 방침도 한 몫 했다.

▶황=한국 정부도 블록체인 기술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명확한 방향성이나 세부 실행 방법에 있어서는 부족하다. 구체적으로 네덜란드의 사례를 설명해준다면 도움이 될 것 같다.
▶폼프=정부가 사용 사례(use case)를 설정한 뒤 블록체인 개발자와 공무원들이 함께 스타트업을 꾸려 아이디어를 내고 시제품(프로토 타입)을 만들었다. 고위 관료들의 반응이 긍정적이었다. 필요한 사람을 발굴하고 팀을 꾸리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정부와 민간 개발자들이 협업하는 스타트업을 통해 시작한 게 중요 포인트다. 민간이 정부에 제안하는 방식이었다면 실현되기 어려웠을 수 있다. 처음부터 정부가 협업 형태로 참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저는 간단한 실험이나 시제품 등을 통해 블록체인 교육을 확장해보려 했다. 각 부처의 다양한 질문에 답해나가는 과정에서 내용 자체도 발전했다. 신기술에 대한 관료들의 관심은 5년 전만 해도 기대하기 어려웠으나, IT 기술이 모든 분야로 퍼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파일럿 프로젝트를 통해 민관 협력을 실제로 해보면서 각자의 역할을 파악 및 체득하고 있다. 현재는 정부 각 부처에 블록체인 담당자가 배정됐다. 전담 부서도 만들고 있는 중이어서 앞으로 프로젝트와 협업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황=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되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블록체인 기술은 완성형이 아닌 만큼 바톰업 방식으로 한 단계씩 스케일을 확대해나가는 방향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런 맥락에서 네덜란드 정부의 시도가 의미 있는 것 같다. 프로젝트의 성과는 어떻게 평가하나.

▶폼프=프로젝트마다 모두 성격이 다르고 다양해 한 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프로젝트 성과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민관이 협업하는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부처별 블록체인 부서가 생기고, 각자의 역할도 파악하고, 앞으로의 블록체인 사업 확장에 대비할 수 있게 됐다. 즉 블록체인 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마련되고 있다는 점이 만족스럽다. 이제 전국적, 또는 국제적인 블록체인 프로젝트로 진행하는 단계의 사업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는데, 지금까지 겪지 못한 각종 변수들을 파악 및 개선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예상된다. 물류 관련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보자. 국경을 넘기 위한 국가 간 협업 필요성을 비롯해 그 과정에서 법제는 어느 쪽을 따를 것이며 규정은 어떻게 정할 것인지 등의 극복 과제들이 많이 남아있다.

▶황=“네덜란드 정부의 역할은 주도하는 게 아니라 도와주는 것”이라는 설명이 납득된다. 네덜란드는 작은 정부를 추구하면서 블록체인 기술을 적극 활용한다고 들었다. 지난해 출범한 민관학 협력기구인 네덜란드블록체인연합(DBC·Dutch Blockchain Coalition)이 굉장히 좋은 정부 역할의 롤모델이라 생각한다. 프로젝트 담당자로서 평가한다면.

▶폼프=파일럿 프로젝트는 네덜란드 정부가 관리하는 일종의 실험에 가까운 프로젝트였다. 그러다 지난해 경제부처에서 정부와 민간이 공동 참여하는 DBC를 꾸렸다. 이를 통해 정부가 참여하는 프로젝트들을 시뮬레이션하거나 테스트 환경을 직접 제공하기도 한다. 가로등 사업 관련 프로젝트에 도시 일부 지역을 테스트 베드로 제공해 도움을 주는 식이다. 물류 프로젝트의 경우 블록체인을 이용해 서류 작업 처리시간 단축 아이디어를 구현하려면 국가 간 협의해야 하는 사항이 있다. 정부가 외국 정부와 논의하는 역할을 맡았다.

▶황=국내 블록체인 산업은 여전히 ‘규제’ 문제로 시끄럽다. 네덜란드는 이 같은 이슈가 문제가 된 적은 없는지.

▶폼프=물론 규제도 정부 역할로 생각할 수 있다. 한국은 암호화폐 공개(ICO)와 규제에 대해 활발히 논의된다고 들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아직 규제가 부각되지는 않는다. 현재 진행 중인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정부나 기업에서 펀딩(모금)한 것이어서 ICO의 필요성이 높지는 않다. 물론 ICO와 규제에 대해서는 유럽연합(EU) 차원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단 ICO에 앞서 충분히 실험·검증할 수 있는 환경은 마련돼 있다. 여기에도 정부 역할이 컸다고 본다. 규제와 제도를 완비하고 정돈된 사업을 시작하기보다는, 관련 환경을 조성하며 협조 및 논의를 통해 진행 상황에 걸맞게 제도를 보완하는 쪽을 권하고 싶다.

▶황=검증된 블록체인 기업들에 대해서는 ‘스케일업’이 필요한 단계다. 이와 관련한 펀드레이징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폼프=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시간’ 이다. 국가 간 협업과 조율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서로 환경이 다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물론 긍정적 측면도 있었다. 다양한 환경에서 각종 주제를 논의하면서 생각지 않았던 영감을 얻거나 네트워크를 쌓기도 했다. 경험상 어떠한 프로젝트를 하느냐 못지않게 프로젝트 경험 과정에서 얻는 것도 많고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곧바로 실무를 진행하는 것보다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민간투자자와 정부의 관계는 성공적 모델을 만든 후 본격 확장하는 단계에서 아주 중요한 주제다. 네덜란드도 아직 최적의 투자 솔루션은 없다. 기존 방식을 포함해 다양한 투자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도 긴밀한 민관 협력이 요구된다.

▶황=초기 인프라 구축과 사업 검증까지 한 것만으로도 정부는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 이후는 민간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끔 한 자리였다. 바톰업 방식의 민관협력 모델을 현실로 구현한 네덜란드 사례가 롤모델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정리=김형진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 starhaw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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