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출원은 37억광년 떨어진 블레이자
韓성균관대 연구팀 등 12개국 300명 과학자 참여
다중신호 천문학 또 한번 쾌거

아이스큐브 중성미자 검출기가 남극의 아문센 스콧 기지 지하 1450~2450m 깊이에 있는 얼음 속에 설치돼 있는 모습. 구멍을 뚫고 설치한 광센서 5160개가 지구 반대편 북반구 하늘로 날아온 중성미자를 검출한다. 사이언스 제공

중성미자는 우주를 이루는 기본 입자 중 하나지만 잘 관측되지 않아 흔히 ‘유령입자’로 불린다. 우주에는 흔하고 고에너지를 내뿜는 천체에서 나올 것으로 추정만 해왔지만 구체적으로 우주의 어디에서 오는지 정확한 방출원은 거의 밝혀지지 않았다. 전 세계 300명의 과학자들이 공동 연구를 통해 우주에서 중성미자를 방출하는 천체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독일 출신 과학자인 카르스텐 로트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를 포함한 전 세계 12개국 49개 연구기관 300여명의 과학자로 구성된 국제 연구진은 지난해 남극에 설치한 중성미자 검출장치인 아이스큐브 검출기에서 포착한 중성미자가 지구에서 37억 광년 떨어진 천체인 ‘블레이자’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13일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연구진이 중성미자 검출한 직후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운영하는 감마선 우주망원경인 페르미 광역우주망원경과 스페인 카나리아제도에 설치된 감마선영상체렌코프망원경 등에 요청해 같은 시기 블레이자가 내뿜은 감마선을 관측하면서 그 정체를 확인한 결과다. 과학계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던 중성미자의 방출원을 확인한 것과 함께 실제 어디서 왔는지까지 구체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환호하고 있다. 또 중성미자 검출기와 용도가 다른 감마선 우주망원경을 함께 활용했다는 점에서 다양한 우주 관측수단을 활용해 하나의 현상을 규명하는 ‘다중신호 천문학’이 또 한 번 빛을 발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번 연구에는 아이스큐브 국제공동연구단에 참여한 로트 교수가 이끄는 성균관대 연구팀 6명도 공동연구자로 논문에 이름을 올렸다.

○ 남극 검출기서 첫 관측, 감마선으로 방출원 위치 추적

중성미자는 지구에서 손톱만한 면적에 700억개가 넘게 통과할 정도로 흔하지만 다른 입자와 반응하지 않아 검출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중성미자가 아주 드물게 물질과 부딪히면, 고요한 연못에 돌을 던질 때 나타나는 파문처럼 빛의 물결이 생긴다. 2002년 고시바 마사토시 도쿄대 명예교수는 중성미자 검출한 연구로, 또 2015년 그의 제자인 가지타 다카아키 일본 도쿄대 교수는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다는 사실을 밝힌 연구로 각각 노벨상을 받았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다른 신호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폐광에 중성미자 광검출기를 설치한 것과 달리 아이스큐브 연구진은 남극의 아문센 스콧 기지 지하 1450~2450m 깊이에 있는 얼음 속에 구멍을 뚫고 광센서 5160개를 설치했다. 얼음 아래 설치된 검출기는 지구 반대편 북반구 하늘로 날아온 중성미자를 검출한다. 지구를 다른 우주 입자를 걸러내는 필터로 쓰는 방식이다.우주에서 날아오는 중성미자가 얼음 분자와 반응해 빛 형태의 신호를 만들어내고 이를 광센서 모듈에서 검출해 간접적으로 검출하는 원리다. 아이스큐브 검출기는 중성미자 검출 장치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지금까지 6차례나 시설을 개선했다.

연구진은 지난해 2017년 9월 22일 아이스큐브 검출기에서 오차범위 바깥의 신호를 포착했다. 고에너지 중성미자가 만든 신호였다. 연구진은 곧장 페르미 감마선 우주망원경과 감마선영상체렌코프망원경 등에 후속 관측을 요청했다. 그 결과 중성미자를 방출한 출처가 37억 광년 떨어져 있고 천체 적도 부근에 있는 활동성 은하핵(퀘이사)의 한 종류인 블레이자(TXS0506+056)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활동성 은하핵은 가운데 거대한 초대형 블랙홀이 회전하고 있고 강력한 물질을 분출하는 제트 현상이 나타나는 천체다. 블레이자는 제트가 지구 방향으로 분출되면서 강력한 빛을 낸다. 블레이자에서 나오는 빛은 겉보기엔 빛의 속도보다 빨라 보이기도 한다. 이 활동성 은하핵은 회전축이 흔들리면서 제트 분출 방향이 흔들리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블레이자가 우리 눈에는 깜박거리게 보이는 것이다.
중성미자를 방출하는 천체의 종류와 실제 위치가 밝혀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방출원은 태양과 초신성 1987A로 30여 년간 새로운 방출원은 더 나타나지 않았다.

○ 여러 신호로 방출원 정체 파악

사실 아이스큐브 검출기는 중성미자가 언제 도착했는지만 알 수 있다. 반면 별의 탄생과 소멸 과정에서 나타나는 강력한 에너지를 측정하는 감마선 망원경으로 우주를 살펴보면 제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고에너지 감마선을 관측할 수 있다. 중성미자 검출 시점에 고에너지 감마선을 내뿜은 천체를 관측하면 중성미자를 방출한 천체일 가능성이 높다. 중성미자는 천체에서 일어나는 강력한 활동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중성미자도 활동성 은하핵 중심부 블랙홀에서 물질을 끌어들인 뒤 제트를 통해 내뿜은 엄청난 고에너지 물질과 함께 나온 것으로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연구진이 이번에 검출한 중성미자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있는 입자가속기를 이용한 것보다 40배 더 강하게 가속된 것이다. 태양이나 초신성 1987A에서 방출된 중성미자보다 에너지가 수십만배 높은 300테라전자볼트(TeV)로 나타났다.

하나의 천체 현상을 살펴보기 위해 중력파와 감마선, X선, 가시광선 등 다양한 영역에서 동시에 관측하는 다중신호 천문학이 빛을 발한 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서울대와 한국천문연구원,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을 비롯한 한국 연구진과 미국항공우주국(NASA), 유럽천문대 등 45개국 연구진은 중력파 검출기인 미국의 레이저간섭계중력파관측소(LIGO·라이고)와 유럽의 버고(VIRGO)에서 사상 처음으로 중성자별 충돌 결과로 나타난 중력파를 검출한 데 이어 같은 현상을 감마선 위성과 X선 위성, 천체망원경을 통해 확인했다. 관측에는 중력파 검출장치인 라이고와 버고를 비롯해 천문연의 외계행성탐색시스템(KMTNet) 등 전 세계의 70개가 넘은 관측 시설이 동원됐다. 정태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새로운 중성미자 방출원의 존재와 실제 위치를 규명한 것이 가능한 것은 중성미자 검출기과 감마선 망원경 등 다양한 신호를 동시에 활용한 덕분”이라며 “다중신호 천문학에서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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