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맨 처음 그를 덮친 것은 극도의 공포였다. 폭우로 불어난 물이 순식간에 동굴 내부로 차올랐다. 안전지대로 이동하느라 5㎞나 이미 들어온 상태였다. 눈앞이 캄캄했다. 잠시 심호흡을 한 그는 “반드시 돌아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불안에 떠는 11~16세 소년 12명을 다독였다.

17일간의 ‘동굴 생환 기적’을 일군 태국 소년축구팀 코치 에까뽄 찬따웡세(25). 그는 체력을 아끼기 위해 움직임을 최소화하라며 매일 명상을 가르쳤다. 물도 천장과 종유석에 맺힌 것만 마시라고 했다. 아이들이 생일파티용으로 준비해간 간식을 조금씩 나눠먹으며 열흘을 버티는 동안 그는 한입도 먹지 않고 견뎠다.

가끔은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축구팀 구호를 외치면서 기운을 북돋웠다. 그는 체력이 소진된 가운데에서도 최후의 한 명까지 내보낸 뒤 마지막으로 나왔다. 그의 헌신적인 리더십 덕분에 극한상황에서 전원이 생환할 수 있었다.

구조 과정에서 한 명이 희생된 태국 네이비실 요원들과 미군 구조대원, 전 세계에서 달려온 동굴 잠수 전문가들도 기적의 주인공이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흙탕물을 헤치고 생존자들을 찾아낸 영국의 전직 소방관 리처드 스탠턴과 컴퓨터 기술자 존 블랜던, 마지막 구조 순간까지 곁에서 건강을 돌본 호주 의사 리처드 해리스…. 이런 ‘숨은 영웅’들의 노력과 소년들의 용기, 코치의 살신성인 정신이 함께 이룩한 값진 성과였다.
2010년 칠레 광산 붕괴 사고로 지하 700m에 매몰된 광부들도 그랬다. 언제 구조될지 모르는 불안감, 섭씨 35도의 더위, 부족한 공기와 물, 붕괴 직전의 암반 등 최악의 조건에서 작업반장 루이스 우르수아의 생존 리더십으로 ‘69일 만의 생환’에 성공했다.

남극 탐험 중 몰살 위기에 처한 대원 27명을 15개월간의 사투 끝에 구조한 어니스트 섀클턴의 집념, 엔진이 고장난 비행기를 강에 비상착륙시켜 승객 150명을 모두 구한 허드슨 강의 기적, 험준한 산맥에 추락한 비행기에서 탑승자 45명 중 생존자 16명이 72일 만에 무사 귀환한 안데스의 기적은 또 어떤가.

6·25 때 군인과 민간인 20여만 명의 목숨을 구한 흥남철수의 주인공 현봉학과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 레너드 라루도 잊을 수 없다. 정유재란 때 13척의 배로 왜선 133척을 격퇴한 명량해전, 국민소득 67달러의 빈국을 3만달러 반열에 올려놓은 ‘한강의 기적’까지 인간의 불가사의한 능력은 시공을 초월한다.

이렇게 기적을 일구는 사람들의 헌신과 집념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산다. 과학 천재 아인슈타인도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기적이 없다고 여기며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믿으며 사는 것이다”고 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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