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수 경제교육연구소장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 국빈 방문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면담한 것을 두고 이런저런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현지 스마트폰 공장 준공식에서 이뤄진 짧은 만남이었다. 그렇지만 문 대통령이 예정에 없던 자리를 마련해 “한국에서도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 긴 여운을 남긴다. 압박 일변도인 국내 기업 정책이 달라지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오히려 진보 진영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는 시각이 있다니 무언가 변화가 모색되기는 하는 모양이다.

'슈퍼 예산'도 다를 게 없다

조짐이 없지는 않다. 소득 분배와 고용 악화를 통계 조작으로 가리려던 경제수석이 전격 교체된 마당이다. 문 대통령이 최근 기업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그렇다. 무엇보다 고용에 대한 고민이 클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해명하지만 내년에 ‘슈퍼 예산’을 짤 것이란 관측이 잇따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당초 462조원으로 작년보다 7.8% 늘릴 예정이던 것을 470조원 수준으로 더 확대하라고 요구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도 그럴 것이 고용은 악화일로다. 청년 체감실업률은 지난 6월에도 22.9%로 사상 최악 수준이었고, 취업자 수는 제조업에서조차 3개월 연속 줄고 있다. 일자리가 없는 이 땅의 청년들은 갈수록 절박해진다. 고용 실패, 경제 실패에 대한 위기감은 당연하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다. 슈퍼 예산도 마찬가지다. 재정을 쏟아부을수록 일자리가 잘 풀릴 것이라면 오산이다. 해마다 일자리 추경을 짰어도 일자리가 늘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 큰 반발 속에서 세금을 억지로 올려 수십조원의 재정을 쓰는 것보다 기업 투자를 독려해 일자리를 만드는 게 돈도 덜 들고 더 좋은 일자리를 훨씬 많이 만든다. 세수도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도 안 되는 방식에 아직도 매달리는 것은 지지세력을 의식한 정략적 고려 외엔 설명할 길이 없다.
"기업 지켜야 근로자도 보호"

지금 기업들에 투자하라고 등을 떠밀 여지가 없다. 올해 사상 최대의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 축소가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건만 최저임금 1만원 구호는 요란하다. 여당은 물론 정부도 온 부처가 기업과 기업인을 잠재 범죄자로 몰아붙이는 모습이다.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며 해외 투기자본에 날개를 달아 주고 멀쩡한 민간 기업의 지분을 팔라고 압박한다. 금융회사를 상대로 전쟁까지 선포했다. 기득권 장벽이 높기만 한 노동시장 개혁은 남의 나라 일이 돼 버린 지 오래인데 일선 현장은 근로시간은 줄고 고용 비용은 치솟아 아우성이다. 기업에 경영권 방어와 현상 유지하는 데만 막대한 자금과 인력, 시간을 쏟게 하면서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만들라면 될 일인가.

미국 트럼프 정부가 무리하게 ‘무역전쟁’을 밀어붙이고 있다.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자국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지만큼은 주목해야 한다. 지지율 하락에도 일자리를 만들려고 노동시장을 개혁해 가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또 어떤가.

일자리 창출이 간절하다면 말이 아니라 국정이 달라져야 한다. 지지세력 눈치나 보는 국정으로는 어림도 없다. 일자리가 없으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무슨 의미가 있나. 국책연구기관조차 경제가 어렵다는 진단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일자리가 최대의 복지이고, 기업을 못 지키면 근로자를 보호할 수도 없다.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큰 정부가 아니라 좋은 기업이다. 유념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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