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필 정치부 기자 jp@hankyung.com

“어디 표 계산 한 번 똑바로 해 봅시다.”

11일 국회 부의장을 노리고 있는 어느 한 의원실 관계자 입에서 나온 말이다. 같은 당내 부의장 자리를 놓고 경합하는 라이벌 의원을 겨냥한 발언이다. 의원들을 대상으로 경선을 벌여 투표에 부친다 해도 자신들이 이기게 돼 있으니 헛수고하지 말라는 투다.

여야는 지난 10일 부의장, 상임위원장 등 국회 각급 수장 자리를 어느 정당이 가져갈지를 놓고 치열한 자리싸움을 벌였다. 배분 협상이 끝난 다음날 정치권이 행동에 옮긴 일은 40일 넘게 ‘개점휴업’ 상태였던 국회를 어떻게 정상화시킬까 하는 고민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누구를 부의장이나 상임위원장에 앉혀야 할지 ‘이전투구’를 벌이는 것이었다.
여야 협상 결과 국회의장은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부의장 두 자리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에서 한 명씩 추천권을 갖기로 했다. 상임위원장 자리도 협상 결과에 따라 배분받은 정당에서 추천한다.

상임위원장에 나설 수 있는 권한은 다선 의원들에게만 있다는 게 국회의 공공연한 관례다. 상임위원장 자리를 정당별로 전리품처럼 나눠 갖고, 배분받은 자리를 다시 ‘선수(選數)’에 따라 배분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위원장이 나오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상임위원장으로 선수가 같은 후보가 경합할 때도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기준은 전문성보다는 연륜과 나이다.

외국 의회 사례를 비교하면 이 같은 관례는 상식적이지 않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해당 상임위에서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를 기준삼아 위원장을 추천한다. 영국 하원은 별도의 ‘상임위원회 배정위원회’를 두고 각 당이 추천한 위원장 후보가 전문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승인 거부까지 할 수 있도록 보완 장치를 두고 있다.

현재 각 당이 잠정적으로 조율을 거친 상임위원장 최종 후보군을 보면 재선급 이하는 없다. 대체로 전반기에 상임위원장을 해 보지 못한 중진의원들이 대기순번을 받아 기다리고 있다. 우리 국회법 어디에도 상임위원장은 3선 의원 이상만 가능하다는 조항은 없다. 정해진 국회 의사 일정을 밥 먹듯이 어기는 정치권이 이 관례만큼은 불문율처럼 철저히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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