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 논설위원

베트남은 1975년 공산화된 뒤 수년간 경제난에 시달렸다. 연 450%의 인플레이션을 겪기도 했다. 매년 수십만 명의 ‘보트 피플’이 발생하는 등 정치·사회적 혼란까지 이어졌다. 공산당은 일부 농지를 각자 경작해 여분의 쌀을 팔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제한적 경제 개혁에 착수했다.

본격적인 개혁·개방 노선을 택한 것은 1986년 6차 공산당대회에서 ‘도이모이(쇄신)’를 선언하면서부터다. 외국인 투자법 공포, 국유기업 민영화, 시장가격 자유화, 토지 상속권·담보권·사용권 인정, 기업 설립 요건 완화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러나 ‘도이모이’ 시행 초반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무엇보다 미국의 경제 제재가 풀리지 않아 대규모 외자 유치에 애를 먹었다. 1995년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돌파구가 열렸다. 이후 개혁·개방을 가속화한 덕분에 지난 30년간 연평균 6.7%의 고도성장을 이뤘다.

최근 북한의 경제 개발 모델로 베트남식이 많이 거론되고 있다. 김정은은 ‘4·27 남북한 정상회담’ 때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베트남식 개혁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이 ‘베트남 모델’을 따르려는 것은 베트남 공산당이 1당 독재를 유지하면서 경제 발전을 이뤘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그제 “베트남의 기적이 북한의 기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식 개혁·개방’ 모델을 앞세워 대북 압박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한의 베트남 모델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영국 캐피털 이코노믹스 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북한이 설사 개방 정책을 채택한다고 하더라도 해외 투자자들은 상당 기간 북한에 들어가기를 꺼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기업인 시양이 북한에서 철광석 채굴 사업을 벌인 지 1년도 안 돼 철수한 것에서 드러나듯, 북한의 투자 유치 및 관리 시스템이 국제 기준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섣부른 개혁·개방은 ‘사상 오염’의 우려를 높이고, 그것이 체제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도 머뭇거리고 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는 “베트남과 달리 외부 정보 차단, 주민 이동 금지 같은 것들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개성공단식 단절 모델’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개혁·개방이 가능하려면 1차적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풀려야 하고 미국과 수교도 이뤄져야 한다.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는 필수적인 선결 조건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강도적 요구’라고 비난하고 있다. 김정은이 어떤 개혁·개방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든 간에 당분간은 현실화되기 어려워 보인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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