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마찰 탓 세계 가치사슬 약화…'10년 호황' 종료 우려
한국에도 통상압력 집중…新3高에 가계부채도 위험수위
경제고통지수 악화일로…남북협상 '테일 리스크'도 상존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세계 경제 주도권 싸움에 흔들리는 한국 경제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 통상마찰이 좀처럼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첫해에는 달러 약세에 위안화 약세로 맞서는 ‘환율 전쟁’이 촉발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는 ‘관세 전쟁’, 최근에는 미래 국부 주도권을 놓고 ‘첨단기술 전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스트롱 맨’은 자국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을 강조한다. 미·중 간 통상마찰은 트럼프 정부의 보호주의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전통적 미국 우호국인 유럽, 캐나다도 맞대응하고 있다. 달러 약세 정책에는 자국 통화 평가절하보다 미국에 더 불리한 탈(脫)달러화로 대응하고 있어 종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양상이다.

미·중 간 통상마찰이 1년 반 이상 지속되면서 그 파장이 여러 분야에 미치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세계 가치사슬(GVC: global value chain)이 약해지고 있는 점이다. GVC란 ‘기업 간 무역’과 ‘기업 내 무역’으로 대변되는 국제 분업 체계를 말한다.

각국의 보호주의로 인한 GVC 약화 현상은 세계 경제 앞날에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1990년대 이후 세계교역 증가율과 GVC 간 상관계수를 추정해 보면 0.85에 이를 만큼 높게 나온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세계교역 탄성치(세계교역 증가율÷세계경제 성장률)에서 GVC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지속돼온 세계 경기 장기 호황 국면이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운 비관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국 경기는 작년 3분기를 정점으로 성장률이 낮아지는 추세다. 미국 경제만 하더라도 작년 3분기 3.2%를 기록한 뒤 같은 해 4분기에는 2.9%, 올해 1분기에는 2.0%로 떨어졌다.

하향 조정되는 세계 경제 성장률

올해 하반기를 앞두고 수정 전망치를 발표한 세계은행(World Bank),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세계 3대 예측기관은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 조만간 국제통화기금(IMF)도 같은 내용을 담은 3분기 전망치를 내놓을 예정이다. 금융위기 이후 수정 전망치를 내놓을 때마다 상향 조정해오던 추세가 10년 만에 종료되는 것이다.

국제 금융시장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세계 경제 최대 리스크가 좀처럼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성향이 높아지고 있는 점이다. 미·중 간 마찰이 표면화한 지난 3월 이후 세계 주가는 평균 10% 내린 반면 달러인덱스는 비슷한 폭으로 올랐다.

미·중 간 통상마찰은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경제 주도권 싸움인 데다 경제발전 단계 차이가 워낙 커 미국의 대중(對中) 무역적자가 쉽게 줄어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입장에서도 밀리면 정치 생명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우려 또한 장애요인이다.

보호주의는 스트롱 맨이 추구하는 이익 달성과는 특별한 관계가 없다. 보호주의 지수(1-미국 헤리티지재단의 자유무역지수)와 국익 상징지표(무역수지)를 회귀분석한 결과를 보면 ‘무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롱 맨일수록 ‘갈등과 대립’보다 ‘협력과 공존’을 추구해야 세계 경제 성장에 기여하면서 정치적 생명까지 연장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신흥국 금융위기 재연될 수도
최근 국내에서도 경기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그것도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 각료 사이에 벌어지고 있어 정책 수용층인 기업과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보다 우려가 앞선다. 종전에 경기 둔화 논쟁이 있을 때는 민간이 제기하고 정책당국이 반박하는 모습이 전형적이었다.

한국 경제 둔화(혹은 침체) 우려는 나라 밖에서 먼저 제기됐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진단과 예측지표로 가장 정확하다고 평가받는 OECD의 복합선행지수(CLI)를 보면 한국은 지난 4월 99.5로 5년2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 지수가 ‘100’을 밑돌 때는 ‘경기 둔화’ 혹은 ‘침체’를 의미한다.

우리 경제의 앞날에 놓인 변수도 녹록지 않다. 대외적으로 각국의 보호주의 물결이 누그러지지 않는 가운데 트럼프 정부의 통상 압력이 한국에 집중되고 있다. 일본, 유럽을 중심으로 선진국 경기 성장세도 한풀 꺾였다.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터키,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국은 금융위기 재연 조짐도 감지된다.

채산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국제 금리와 유가, 달러 가치가 동시에 올라가는 ‘신(新)3고(高)’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달러 강세(원화 약세)를 우리 수출과 경기에 긍정적인 변수로 보는 시각이 있으나 미국 국채금리 상승에 수반되는 달러 강세는 자금 이탈, 달러 부채 부담 증가 등의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크게 우려된다.

가계부채 부담도 위험 수위를 넘은 지 오래됐다. 거시(성장률과 고용)와 미시(상장기업 실적) 차원에서 삼성전자 쏠림 현상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최저임금과 법인세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등 기업 정책도 우호적이지 않다. 남북한과 미·북 정상회담 이후 후속 조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테일 리스크(tail risk·꼬리 위험)’가 나타날 수도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경기가 둔화(혹은 침체)할 경우 이를 살릴 수 있는 정책수단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통화정책은 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을 추진하기는 어렵다. 재정정책은 아직까지 여유가 있으나 재정수지가 너무 빨리 악화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외환정책은 외화거래 내역을 공개해야 돼 실질적으로 ‘개입’이 어려워졌다.

미·중 간 통상마찰, 신3고, 위험 수위 를 넘은 가계부채, 가용 정책수단 제한 등은 워낙 큰 변수이기 때문에 한국 경제에 ‘퍼펙트 스톰’이 닥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퍼펙트 스톰이란 거대한 태풍이 충돌해 막대한 자연재해를 가져다주는 현상을 말한다. 대외환경에 의존하는 국가일수록 이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성장률 3% 달성 어려워

대내외 예측기관도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을 내리기 시작했다. 정부의 목표치 3% 달성은 어렵다는 시각이다. 미·중 간 무역마찰이 지속될 것이란 전제 아래 2.5%까지 내려잡는 비관론도 나오기 시작했다. 국민이 느끼는 경제고통지수(실업률+물가상승률)가 지표 경기보다 더 악화될 것으로 보는 예측기관이 늘어나고 있는 점을 정책당국은 주목해야 한다.

우리 경제는 유독 위기설에 민감하다. 정책당국자가 알아둬야 할 것은 대내외 여건이 악화될 때마다 위기설이 곧바로 판치는 것은 ‘통계 수치상의 위기’가 아니라 정부의 경제운용 체제를 중심으로 한 ‘사회 시스템상의 위기’에 연유한다는 점이다. 정책 책임자는 경기 논쟁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을 안정시킬 수 있는 대책 마련에 몰두해야 한다.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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