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경제 붕괴해도 '親노동 反자본'
'화석화된 신념'으로 국민 삶 재단
월급 줘봤으면 그런 폭주 못할 것

오형규 논설위원

30년 된 회사 인근 식당이 문을 닫았다. 된장찌개, 삼겹살을 넉넉한 인심을 얹어 팔던 곳이었다. 장사가 안되니 주인 건강이 나빠지고 의욕도 떨어졌다고 한다. 옆골목 양푼찌개집도 폐업했다. 가는 곳마다 눈여겨보니 ‘임대’ 표시가 수두룩하다.

자영업 몰락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고, 사람 쓰고, 세금 내면서 지금처럼 자괴감이 든 적이 없다고들 한다. 업주 수입이 ‘알바’보다도 못한데, “최저임금도 못 주면 접어라” 같은 소리나 듣는다. 영세사업자 30%는 이미 예비 범법자다. 전국 폐업률(2.5%)이 창업률(2.1%)을 앞지른 게 남의 일 같지 않을 것이다.

바닥경제가 무너지니 바닥민심도 사납다. “인터뷰할 때 덕담을 건네던 중소기업 사장들이 요즘은 욕부터 한다”는 중소기업연구원 관계자의 귀띔이다. 선거 때 한산한 가게에 들렀다가 험한 소리를 들은 여당 후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근로자의 관점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는 인기가 높을 만하다. 최저임금 올려주고, 근로시간 줄여주고, 복지를 늘리면서도 서민 증세는 없다고 한다. 국가가 ‘내 삶’을 책임지고, ‘더불어 잘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도 약속했다. 경제 실정으로 3주째 하락했다지만 대통령 지지율이 여전히 68.9%에 이른다.

정권 차원에서 월급 받는 사람은 월급 주는 사람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다수에 어필할수록 표가 된다. 부작용이 뻔한 소득주도 성장을 “흔들림 없이 더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배경일 것이다. 하지만 성과로 입증 못 하면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일 뿐이다. 정권 3년차부터는 대개 바닥경제가 민심을 좌우한다.

대통령의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효과가 90%”라는 발언은 역설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줬다. 열 집 중 네 집은 자영업자, 실업자, 비경제활동 가구란 얘기다. 하지만 소득주도 성장은 월급 받는 ‘상대적 다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저임금 급등, 근로시간 단축 등은 작업이 정형화된 근로자에겐 ‘복음’이나 다름없다.
그 혜택의 중심에 대기업·금융·병원 등의 노조와 공무원, 교사로 구성된 양대 노총이 있다. 성과급 더 달라고 투쟁하고, 수당 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도 쟁취할 수 있는 ‘상위 10%’다.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당·정·청의 설계주의자들이, 역시 월급 따박따박 받는 고임 근로자를 위한 정책을 펴고 있는 셈이다.

“뭘 믿고 그러느냐”는 전문가들의 비판에도 끄떡 않는 것은 청와대 참모들부터 ‘화석화된 신념’에 갇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86세대’가 신봉한 노동해방론은 세상을 ‘노동자 대 자본가’의 대립으로 본다. ‘친(親)노동 반(反)자본’이란 정책 일관성이 뚜렷한 이유다.

오늘날 노동해방론은 노동자가 자기 노동의 주인이 되는 것(노동 안에서의 해방)과 노동 자체에서 벗어나는 것(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모두 포괄한다. 노동자를 착취·수탈하는 자본가(대기업, 부자 등)는 당연히 응징 대상이다. 재벌 해체까지 거론하는 재벌개혁, 부자증세 3종세트(보유세·금융소득·임대소득 과세 강화)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가 빠르다.

하지만 국민의 삶은 획일적 규제로 꿰맞출 만큼 단순하지 않다. 작업형태만 해도 수천, 수만 가지가 있고 삶의 가치와 방식도 그만큼 다양하다. 경제는 직선으로 치는 ‘4구 당구’가 아니라 ‘스리쿠션’으로 돌아간다. 정책의 의도가 선하면 결과도 선할 것이란 확신은 착각일 뿐이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 낭인시절 생수회사를 운영하다 파산한 경험이 있다. 이로 인해 두고두고 공격 받았지만 원가, 시장경쟁, 자금조달의 지난(至難)함을 체험했다.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으로 한·미 FTA, 이라크 파병 같은 국익차원의 결단도 가능했다.

반면 현 정부의 핵심 실세들은 원가 비용 책임 등의 개념이 결여돼 있다. 월급을 줘봤으면 그런 ‘폭주’는 하기 어려울 것이다.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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