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휘 정치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
“제 살 길만 찾는 의원님들 보고 있자니….”

5일 만난 자유한국당 당원 A씨는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고 했다.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의 ‘비상대책위원장 모시기’에도 “관심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보좌진 대부분이 이 같은 ‘안물·안금(묻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다)’병(病)에 빠져 있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현 지도부와 의원들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원들을 가장 당혹스럽게 하는 건 ‘위원회를 위한 위원회’다. 안상수 의원이 맡고 있는 ‘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 구성 준비위원장’이란 직책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말 그대로 옥상옥이다.
비대위원장 권한에 대해서도 혼선 투성이다. 김 권한대행이 “2020년 공천권을 비롯한 사실상의 전권을 줘야 한다”고 하자 한국당의 한 보좌관은 “2020년 총선까지 비대위 체제로 선거를 치르자는 것인데 그게 정당이냐”고 반문했다. 사정이 이러니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되는 인사들마다 손사래를 친다. 어떤 ‘키’를 잡을 수 있는지 정하지도 않은 채 ‘선장’을 초빙하는 격이다.

정치권에선 한국당에 만연한 보신주의가 걸림돌이라고 지적한다. 지방선거 참패는 홍준표 전 대표의 ‘수구 보수’ 이념 때문이고, 한국당이라는 낡은 간판 때문이라는 착각도 한몫하고 있다. ‘친박(친박근혜)’의 좌장이란 낙인이 찍힌 김무성 의원은 최근 “과거는 바꿀 수 없다. 뭉치지 않으면 설 곳이 없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곧바로 탈당하라는 내부 압박에 직면해 있다.

바둑 용어에 ‘아생연후살타’라는 말이 있다. ‘내 돌을 살려야 다음 공격을 도모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의 한국당은 다른 의미에서 ‘아생연후’ 정당이란 비난을 면치 못할 지경이다. 오로지 “나부터 살고 보자”식의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다. 여당이 개혁입법연대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독주를 예고하고 있지만 손을 놓고 있다. 제1야당으로서 행정부에 대한 견제라는 최소한의 역할마저 포기한다면 ‘아생연후’는 없을 것이라는 유권자들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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