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마련 성공기 (19)

법원 경매법정. 한경DB

50대인 A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늦깎이 투자 신성’으로 통한다. 그가 4년 전 경매로 사들인 서울 도심의 한 아파트값이 68%나 뛰어서다. A씨가 5억원대 초반에 낙찰받은 이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 5월 로열층을 기준으로 9억원까지 올랐다.

하지만 A씨는 당분간 집을 팔 생각이 없다. 처음부터 투자 목적으로 매입한 게 아니어서다. 그가 느낀 만족은 급등한 시세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 자신과 가족들의 삶의 질이다. 경매를 통해 저렴하게 취득한 보람은 덤이다.

A씨는 결혼 이후 쭉 경기 부천에서 지냈다. 2005년부터는 두 번째 집인 중동 ‘그린타운우성2차’에 둥지를 틀었다. 전용면적 84㎡ 아파트를 1억원 초반대에 사들여 8년가량을 살았다.

애초 세 번째 집은 A씨의 구상에 없었다. 하지만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에 결혼식 하객으로 참가했다가 생각이 바뀌었다. 성당 인근 손기정공원을 둘러싸고 서있는 고즈넉한 아파트 단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최근에야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이 아파트는 ‘중림사이버빌리지’다. 입주 10년차를 갓 넘기고 있을 때였다.

좀처럼 보기 드문 아파트라는 게 A씨의 생각이었다. 서울 도심이면서 비교적 한적한 입지인 데다 공원까지 끼고 있었다. 일대는 학군이 약점이란 지적이 있었지만 A씨의 경우 둘째딸이 이미 고교 3학년이었다. 입시를 끝내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다면 부천보단 서울의 문화적 여건 더욱 좋을 터였다. A씨 입장에서도 직장이 있는 광화문으로 다니기 편했다.

서울 중림동 '중림사이버빌리지'. 네이버 거리뷰 캡처

그렇게 2년이 흘렀다. 그새 A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파트 단지를 둘러봤다. 그는 어느 날 아내에게 이사가고 싶은 아파트가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자 A씨의 아내는 즉석에서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 보더니 한 마디를 꺼냈다. “경매로 나왔네?”

전용 84㎡ 신건이 감정가 6억3000만원에 나왔다가 유찰된 직후였다. 당시 실거래가는 6억원 안팎이었는데 2회차 입찰 최저매각가격이 5억400만원에 나왔다.

아내가 나쁘지 않은 반응을 보이자 A씨는 집을 옮기려는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 마침 이사해야 할 이유도 하나둘 늘어났다. 장성한 자녀들이 모두 서울 소재 대학에 다녔다. 잘 지내던 옆집과도 마찰이 생겨 데면데면했다.

결국 A씨 부부는 이사를 결정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부부 모두 부동산에 제법 관심은 있었지만 경매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다. 전문 투자자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매 전문가를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다행히 학교 후배가 업계에서 나름 이름이 있었다. A씨가 사건번호를 미처 다 불러주기도 전에 후배는 단지 정보를 줄줄 읊고 있었다. 낙찰받게 되면 보수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후배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A씨는 며칠 뒤 문자메시지로 1차 보고를 타전받았다. 위험하다는 내용이었다. 집에 짐은 있는데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주 여부도 확인이 불가능했다. 이럴 땐 명도가 힘들다는 게 후배의 얘기였다. 명도는 경매로 얻은 집의 기존 거주자나 임차인을 내보내는 절차다. 명도소송을 통해 강제집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땐 시간과 비용이 문제다.

당황한 A씨는 후배에게 조언을 구했다. 퇴근할 때마다 들러서 집에 불이 켜져있는지 확인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실거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사나흘 잇따라 들르는 동안에도 집에 불이 꺼져 있었다. 전기와 가스 계량기를 검침하려 했지만 동별 출입구가 입주민에게만 개방돼 확인할 수 없었다. 관리사무소에 물어보니 관리비는 한 번도 연체된 적이 없었다.
A씨는 그때부터 인근 중개업소를 탐문했다. 집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수십 곳을 들른 끝에야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교직원이던 집주인이 사업에 크게 실패한 뒤 짐만 남겨놓고 떠난 상태였다. 아파트 입주 때부터 거주하던 터라 관리비는 매달 자동이체로 납부하는 듯하다는 게 중개업소의 얘기였다. A씨는 마음이 무거웠다. 자신이 기회라 여긴 일이 누군가에겐 비극이기 때문이었다.

흔들리는 A씨를 다잡은 건 후배의 두 번째 보고였다. 관리비를 다 냈으니 입찰을 해보자는 내용이었다. “의외로 명도가 쉬울지도 몰라요. 교직원이니 상식은 통하겠죠.”

탱크옥션 캡처

아파트엔 등기 상 여러 건의 가압류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1순위 근저당이 말소기준등기여서 모두 소멸될 권리였다. 2회차 최저매각가는 5억400만원. 후배는 A씨에게 적정 입찰가로 5억3000만원 안팎을 제시했다. 관할인 서울중앙지법은 강남 경매물건이 많아 ‘경매꾼’들의 시선이 대부분 그쪽로 쏠리기 때문에 높지 않은 입찰가를 써도 낙찰엔 무리가 없다는 계산이었다. 다만 동률이 나올 수 있는 까닭에 입찰가격을 끝자리까지 써야 한다고 후배는 강조했다. A씨는 5억3520만원가량을 쓰면서 1원 단위엔 7을 적어 냈다. “패찰하면 인연이 아닌 거니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후배의 마지막 조언이었다.

입찰은 성공이었다. A씨가 낙찰받았다. 감정가 6억3000만원 대비 85%의 낙찰가율이었다. 2등은 5억2000만원 안팎을 적어 냈다. 주변에서 박수가 터져나오자 A씨는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먼저 인사하면서 대출 명함을 건네는 이들도 많았다.

A씨는 주거래은행에서 대출부터 알아봤다. 경락잔금대출을 통해 집을 담보로 잡으면 60%까지 자금을 융통할 수 있었다. 경매보증금을 제외한 나머지는 아내와 함께 그간 모든 자금을 싹싹 모아야 했다.

그러는 사이 후배는 기어코 기존 집주인을 찾아냈다. 낙찰받은 지 하루 만에 집주인을 만나고 와서 “명도를 문제없이 끝냈다”고 A씨에게 보고했다. 도어락 번호가 증거였다. A씨로서는 전문가를 기용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후배는 자신이 받은 수고비의 일정 부분을 집주인에게 이사비로 쥐어줬다. 상도덕이라는 게 후배의 표현이었다. 쉽게 명도를 끝낸 A씨는 곧장 현관문 도어락을 교체했다.

A씨는 새 집을 정비하면서 부천의 기존 집도 처분 수순에 들어갔다. 하지만 매각까지는 몇 달의 시간이 걸렸다. 낙찰받은 집은 그동안 단기 임대인 깔세를 줬다. 마침 전셋집을 구하던 회사 후배에게 월세 30만원을 받고 임대했다.

새 집에 입주하는 날 A씨는 감회에 젖었다. 경매 전에는 아파트 분양을 고려해봤지만 높은 가격에 차마 엄두가 안 났기 때문이다. 기존 집을 판 자금에다 5억~6억원은 족히 더 내야 서울에 입성할 수 있었다. 매매도 마찬가지였다.

A씨 주변에선 당시 용강동 ‘e편한세상마포리버파크’나 현석동 ‘래미안웰스트림’ 분양권을 샀으면 더 큰 돈을 벌었을 것이라고 조언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 단지의 전용 84㎡ 시세가 최근 강북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12~13억원까지 급등해서다. 하지만 A씨는 의미없는 조언으로 여기고 한 귀로 흘린다.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분양가 7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감당할 금융 여건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집은 자신의 조건에 맞춰 사는 것이란 게 그의 철학이다.

A씨가 중림동으로 이사한 뒤론 일대에 변화가 많았다. 서대문고가와 아현고가가 잇따라 철거됐다. 서울역고가 또한 서울로7017로 탈바꿈하면서 명소가 됐다. 환경이 개선되면서 집값은 낙찰가 대비 4억원 가까이 올랐다. A씨는 당장은 집을 팔 생각이 없기 때문에 시세에 개의치 않는다. 그가 보람을 느끼는 부분은 따로 있다. “자녀들이 집이 가까워서 좋다고 말할 때 가장 뿌듯합니다. 서울에 사는 게 소원이라고 했으니까요. 20년 넘게 말이죠.”

정리=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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