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정치숙제"라던 내각제 못 보고 세상과 작별
JP 등 3김시대 지역주의…이번 지방선거서 완화 뚜렷


23일 별세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긴 정치역정 동안 '마지막 정치숙제', '평생의 꿈'이라 여긴 내각제 소신을 관철하려 노력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다.

김 전 총리는 내각제를 고리로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YS) 당시 대선 후보를 지원했다.

이어 1997년 대선에서는 자신이 창당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다시 대권에 도전하려다, 선거 막바지 내각제 개헌을 조건으로 이른바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성사시키며 김대중(DJ) 당시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김대중 정부 탄생과 정권교체에 기여했다.

1997년 11월3일 DJP 합의문에는 "내각제는 독일식 순수내각제로 하고 집권 시 1999년까지 내각제 개헌을 완료한다.

개헌은 차기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주도하고 개헌안 발의도 차기 대통령이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합의는 사실, 그 의미를 곱씹어보면 아이러니 그 자체이며 놀라운 일이기까지 하다.

5·16 쿠데타의 주역 김종필 중령은 전후 분단국가 한국이 4·19 혁명을 거쳐 세운 첫 의회중심제(내각제)의 장면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이후 군복을 벗은 정치군인이 주도하는 대통령중심제 정부 형성을 그 선두에서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속에 탄생한 DJP 공동정부는 독일 같은 나라에선 일반적이지만 한국에선 최초이자 여태껏 마지막인 연립정부(연정)였던 만큼, 비록 순수내각제는 아닐지라도 JP가 내세우는 내각제에 그나마 맞닿아 있는 선택이기도 했다.

다른 무엇보다 JP가 정치적 격변의 시기마다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꺼낸 내각제는 그가 정치파트너들과 권력을 흥정하고 분점하려는 과정에서 유용하게 쓴 위력적인 '도구'였다는 평가도 따른다.

JP는 실제로 여느 나라의 연정처럼 합의문을 작성하고 이듬해인 1998년 DJP 공동정권을 출범시키면서 국무위원직을 배분했고 그 자신은 국무총리직에 앉아 권력의 '2인자'로 복귀한다.

그는 그러나 애초 합의대로 1999년까지 내각제 개헌을 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IMF 환란 극복을 이유로 내각제를 뒤로 미루면서 김 대통령과 김 총리는 내각제 연내 개헌 유보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김대중 정부하에서 내각제를 끝내 하지 않았다.

2000년까지만 해도 국무총리로서 "김대중 대통령의 남은 임기동안 반드시 내각제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던 JP는 2001년 "DJ에게 배신당했다"며 결국 DJP 공조를 파기하기에 이르렀고 DJ와 완전히 갈라섰다.

JP는 이 선택 시기를 앞뒤로 사실상 권력에서 시나브로 멀어지며 '은퇴'를 준비해야 할 것처럼 보이는 '노정객'의 지위로 서서히 밀려나고 있었다.

새천년 들어 DJ 우산 아래 있었던 여당은 새천년민주당이었고 당시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들이 중심으로 이뤄 만든 총선시민연대는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전례 없는 시민참여 선거개입 캠페인인 '낙천·낙선운동'을 전개했으며, 그 중심부 타깃에는 김 전 총리도 자리했다.

당시 자민련은 진보·개혁 시민사회세력이 여권을 든든한 배후로 두고서, 나아가 정부여당과 교감하에 JP 같은 보수 정치인들의 퇴출을 강제하려 한다는 음모론에 관심을 두면서 한배를 탄 김대중 대통령과 친위 세력을 의심했다.

그때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 가장 공격받은 부문은 역시나 '지역감정' 조장 행위였다.

흔히 '충청권의 맹주'로 불리던 JP는 영, 호남의 틈에 충청 독자 세력화를 강조하며 이에 기대는 정치전략을 일삼았다.

JP는 1987년 대선을 거쳐 이듬해 1988년 소선거구제로 치른 총선에서 야당인 신민주공화당의 충청 기반을 다졌고 이후 1990년에는 야당 지위를 버리고 민자당이라는 거대여당의 출현에 함께하는 선택을 한 후 김영삼 정부 출범에 기여했지만 1995년 민자당을 탈당해 자민련을 창당하고는 또다시 충청표에 의지했다.

그런 도전과 시련의 시기에서도 김 전 총리는 뒷심을 발휘하며 2000년 총선에서 9선을 성취했지만, 결국 2004년 4월 정계은퇴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JP가 이처럼 3김 시대로 불리는 시절에 악화시킨 지역주의가 불과 열흘 전 치러진 6·13 지방선거에서 현저하게 꺾인 것은 공교롭다.

그러나 JP와, 그와 함께하는 세력의 충청 의존 정치는 일찌감치 퇴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JP는 그런 흐름 속에 2004년 17대 총선에까지 출마해 10선 도전에 실패하는 것은 물론 당도 선거에서 참패하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것이고, 이로써 그의 내각제 '꿈'도 물거품이 됐다.

김 전 총리는 2015년 부인 고(故) 박영옥 여사의 장례식장에서 조문객과 대화를 나누며 "나는 '대통령 5년 단임제 하지 말라'고 그러다가 정계에서 쫓겨났잖아"라며 내각제에 대한 소신이 여전함을 강조하며 아쉬움을 내비친 바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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