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위 첫 전원회의 열렸지만…

불참 선언했던 노동계, 헌법소원 청구까지
소상공인들도 "업종별 차등화 안되면 불참"
공익위원은 勞 눈치…사상 첫 고시일 넘기나
내년 최저임금을 정하기 위한 최저임금위원회가 시작부터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한 최저임금법 개정에 반발해 노동계가 전면 불참을 선언한 가운데 일부 사용자위원도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화를 요구하며 ‘실력 행사’를 예고했다. 최저임금위원회를 이끌어가야 할 공익위원들은 노동계 눈치를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법정 심의 시한(6월28일)까지는 열흘이 채 남지 않았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제대로 된 논의 한번 없이 시작 단계부터 파행을 겪는 것은 1988년 제도 도입 이후 처음이다.

< 텅 빈 근로자위원 자리 > 내년 최저임금을 논의하기 위한 최저임금위원회 전체회의가 19일 서울 마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부지청에서 열렸다. 최저임금법 개정에 반대하는 근로자 위원들이 전원 불참한 가운데 류장수 위원장(테이블 왼쪽 네 번째)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노동계, 헌법소원 청구까지

19일 열린 최저임금위 5차 전원회의는 근로자위원 9명 전원(한국노동조합총연맹 추천 5명,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추천 4명)이 불참하면서 그동안 현장조사 결과만 공유하고 끝났다. 이날 회의는 차수로는 5차지만 내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심의는 지금까지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첫 회의였다. 6차 회의는 22일, 7·8·9차 회의는 오는 26일부터 사흘 연속 열릴 예정이다.

양대 노총은 이날 헌법재판소로 몰려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회의에 불참한 근로자위원들도 참석했다. 두 노총은 동시에 개정 최저임금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개정 최저임금법은 임금 수준이 비슷하더라도 상여금, 복리후생비 등 수당 구조에 따라 최저임금 인상 혜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헌법 제11조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양 노총은 지난달 28일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 최저임금위 불참을 선언했다.

노동계가 불참한 가운데 사용자위원 ‘변수’도 생겼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18일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화’를 요구하며 추천위원 2명의 최저임금위 불참을 시사했다. 최저임금 인상 및 법 개정 과정에 자신들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노동계에 끌려다니는 공익위원

최저임금위가 공전하는 것은 노동계의 ‘장외투쟁’을 방조하는 공익위원들의 탓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캐스팅보트를 쥔 공익위원들이 노동계 눈치를 보며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5차 전원회의는 지난 14일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노동계가 불참하면서 공익위원들은 전원회의를 ‘비공개 간담회’로 전환했다. “노·사·공익이 같이 합의한 대로 최저임금 심의를 해야 한다”는 사용자위원들의 강력한 요구에도 공익위원들은 전원회의를 연기하고 회의 차수가 기록되지 않는 간담회 형식을 택했다. 전원회의라는 명칭을 쓰면 ‘2회 불참 시 노사 한쪽의 참여 없이도 심의·의결이 가능하도록 한 조항(최저임금법 17조)’이 적용돼 노동계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향후 일정과 관련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류장수 위원장은 “앞으로 예정된 심의 일정은 가능한 한 준수하겠다”며 두루뭉술한 태도를 보였다. 친정부 인사들로 구성된 공익위원들이 노동계 배려를 넘어 끌려다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저임금위 공익위원을 지낸 한 노동 전문가는 “이번 최저임금위는 사실상 노동계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고용노동부의 명확한 요청이 있기 전까지는 공익위원들이 심의·의결을 진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년도 최저임금액은 졸속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사상 처음으로 고시일(8월5일)을 지키지 못하는 ‘위법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고용부 고위 관계자는 “고시일을 넘겨서 최저임금을 정한다고 해도 법적 효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공익위원들도 노동계가 복귀하기만을 마냥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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