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죽음의 계곡을 반드시 살아서 건널 것입니다."

지난 2월 13일 바른미래당 출범대회에서 유승민 전 공동대표가 한 말이다.

부패하고 낡은 기득권 보수의 대안 세력으로서 개혁보수를 지키겠다는 굳은 각오를 담은 것이다.

바로 유 전 대표가 추구하는 '신(新)보수'다.

이를 위해 유 전 대표는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의 합당을 통한 바른미래당 창당을 주도하는 등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두 거대 양당을 대체하기 위한 정치실험을 해왔다.

하지만 바른미래당은 6·13 지방선거에서 거대 양당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은 물론 '초라한 성적표'만을 받아들었다.

'죽음의 계곡'을 건너려는 유 전 대표의 첫 번째 시도가 좌절된 순간이다.

이로써 유 전 대표는 '신보수 정치실험'에 나선 지 120일만인 14일 대표직 사퇴를 전격 선언했다.

유 전 대표는 '합리적 중도'와 '개혁적 보수'의 결합을 앞세운 바른미래당의 초대 공동대표를 맡아 '개혁적 보수'의 한 축을 형성하며 새로운 보수의 꿈을 펼치려 했다.

앞서 그는 탄핵사태 한복판에 탄생한 바른정당에서 '자강론'을 내세워 같은 시도를 한 바 있다.

한국당 지지층으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으면서도 지난해 대선에 출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그는 대선 4위에 그치며 분루를 삼켜야 했고, 바른정당 의원들의 한국당 복귀가 이어지면서 '자강론' 기반이 흔들렸다.
유 전 대표가 바른미래당과의 합당을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동대표로서 당을 운영하는 것은 순탄치 않았다.

호남계의 국민의당 출신 의원들과 사사건건 부딪치며 한계에 맞닥뜨려야 했다.

'중도보수 개혁' 실험은 제대로 해 보지도 못했다는 평가다.

특히 박주선 공동대표를 비롯해 호남계 의원들은 당에서 '보수'라는 말을 쓰는 데 불편함을 내비쳤고, 유 전 대표는 "이 당이 개혁보수를 버린다면 통합 정신에 맞지 않다"며 노선 갈등을 벌였다.

이도 저도 아닌 바른미래당의 혼란스러운 정체성은 결국 선거 참패라는 결과를 불렀고, 유 전 대표의 신보수도 묻혀버렸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신보수'를 목적지로 삼는 유 전 대표의 '제3의 길' 정치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보수 야당이 궤멸 수준의 참패를 하자 범보수 진영에서 '새롭게 보수를 세울 구심점'으로 유 전 대표를 거론하는 등 그를 향해 손짓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 전 대표는 지난해 대선에서 4위에 그쳤지만, 자신의 기반인 대구를 벗어나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등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며 보수 진영의 대안 주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였다.

나아가 유 전 대표 본인도 '개혁 보수' 기치를 내걸고 계속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그는 이날 사퇴 회견에서 "개혁 보수의 길만이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처절하게 무너진 보수 정치를 어떻게 살려낼지 보수의 가치와 보수 정치 혁신의 길을 찾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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