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가 보수를 심판하다
(1) 한국당 '예고된 몰락'

반성만 하다 1년여 허송
대선때 문 대통령 득표율 41%
지지층 단속하고 외연 확대땐
한국당 반전 기회 있었지만
리더십 부재·인물난으로 날려

'평화·기회의 평등' 시대 조류에
'냉전·철학없는 성장' 기존 틀 고수
원칙없이 인기영합 정책 쏟아내

이주영 의원(왼쪽 첫 번째) 등 자유한국당 경남지역 선거지도부가 13일 김태호 경남지사 후보 선거캠프에서 낙담한 표정으로 개표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자책한다. 지난해 대선으로 민의의 철저한 심판을 받았음에도 자유한국당은 거듭나지 못했다.” 지방선거 참패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14일, 심재철 한국당 의원(전 국회부의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약 3개월 전인 3월에도 한국당은 ‘철저한 반성’을 했다. 그달 22일엔 한국당 2기 혁신위원회가 ‘신보수주의 혁신안’이란 제목의 공개 반성문을 내놨다. 당시 홍준표 대표는 행사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 보수진영이 궤멸한 가장 큰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국민 앞에 거듭 태어나겠다.” 한국의 보수를 대변해야 할 한국당 지도부는 이처럼 반성문만 쓰면서 허송세월했다.

◆반성만 거듭한 한국의 보수당

지난 대선(2017년 5월) 때 문재인 대통령은 41.1%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각종 여론조사를 해보면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대략 5 대 5로 분포돼 있다”며 “이론상으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한국당은 투표한 이들 중 60%와 투표장에 아예 오지 않은 부동층을 잡을 기회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홍 대표 체제의 한국당은 번번이 그 기회를 놓쳤다. 가장 큰 위기는 ‘리더십’ 부재다. 홍 대표는 두 전임자(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엉터리 공천’을 비난하면서 스스로 사천(私薦)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그가 선택한 ‘홍의 키즈’는 모두 낙선했다.

홍준표라는 난파선 선장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구조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농단 사태에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이들은 일단 ‘쓰나미’는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행동했다. 탈당과 복당의 반복은 보수층에 기득권 정당이란 이미지만 주입시켰다. 여당 의원들로부터 ‘한국당 의원들은 학생부군신위나 면하려는 이들’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보수의 궤멸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한국당의 궤멸이라고 말한다. 보수의 가치를 대변할 정당을 못 찾은 수많은 보수층이 반란에 가까운 선택을 했다는 얘기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한국당이 안보 보수의 틀을 버리고 개혁과 분배의 가치도 수용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는 이유다.

◆비전과 철학 부재가 낳은 재앙

한국당이 민심의 근본적인 변화를 읽지 못하는 게 문제라는 데엔 많은 전문가가 동의한다. 게다가 보수당으로서의 가치와 철학도 실종됐다. 이번 지방선거 때도 처음엔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라는 구호로 안보 위주의 당 정책을 내걸었다가 비판이 일자 ‘경제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로 급하게 바꾼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마저도 포장 갈아끼우기에 급급했다. ‘서민을 위한 정당’을 내세우면서 홍 대표가 지난해 대선 기간 중 내건 원칙마저 허물어졌다. 홍 대표의 ‘경제 책사’로 알려진 김종석 의원은 지난 대선 때 홍 대표의 경제 비전에 대해 “기업에는 자유를, 서민에게는 보조금보다는 기회를 주자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선 후보들마다 각종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을 쏟아냈다. 김태호 경남지사 후보만 해도 고교까지 무상급식을 내세웠다. 서울 마포구청장에 출마한 한국당 후보는 난방비 전기료 40% 인하를 공약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한 마포구 주민은 “민주당 후보보다 더 인기에 매달린 정책이라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경제 이슈와 관련해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을 대체할 만한 명확한 비전과 논리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냉전보수에서 시장보수로 가는 길이 열렸다”며 “그 이후 한국의 보수당은 이를 철저히 구현함으로써 보수의 가치를 대변하려 하기보다는 맨 오른쪽에 있는 20~25%만 흡수하면 된다는 논리로 버티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반도 평화’ 이슈는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또 다른 사례다. 한 교수는 “한국의 청년 세대를 대상으로 북한과 통일에 대한 인식 조사를 해 보면 그들은 김정은의 독재와 세습정치에 매우 거부감을 갖고 있고 통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안보 이슈가 정당 선택에 큰 변수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기존의 정치 문법을 통한 상황 판단으론 더 이상 안 된다는 얘기다. 이번 지방선거만 해도 한국당 지도부는 이른바 ‘바람론’을 폈다. TK(대구·경북)를 사수하면 영남과 충청에 이어 인천까지 바람이 불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샤이 보수’들이 한국당으로 마음을 돌릴 것이란 기대였지만 결론은 정반대로 나왔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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