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가 보수를 심판하다

정근식·박상인 교수가 말하는 '보수 부활의 조건'

"국가 아닌 시장, 기회의 평등
원칙 지켜야 '무서운 보수' 될수있어"
“남북한 평화시대에 동참하며 경제협력 단계에서 합리성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보수.”(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불평등 해소엔 앞장서되 시장경제와 법치의 원칙을 바로 세우는 보수.”(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정근식 교수

‘어떤 보수가 무서운가’라는 질문에 진보 성향의 두 교수가 내놓은 답변이다. 정근식 교수는 사회운동론 연구에 천착해온 대표적 진보사회학자다. 박상인 교수는 학계에서 ‘재벌 개혁을 외치는 시장주의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두 학자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수가 몰락한 원인으로 탈(脫)분단, 경제적 불평등 해소, 복지국가 이행이라는 패러다임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수구화’한 점을 꼽았다.

두 학자는 한국 보수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가장 큰 원인으로 과거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간 보수와 진보를 구분해온 남북 대결, 개발 우선주의라는 프레임(틀)이 깨지면서 보수의 방향 전환이 필요했는데도 이를 이뤄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우선 미국이 북한에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변화의 의미를 보수가 제대로 읽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강력한 북한 제재를 통한 흡수 통일을 내건 냉전적 보수는 북·미 화해로 가게 되면 갈 곳이 없다”며 “남북 문제에 대해선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되 지나친 민족주의를 경계하는 방향으로 나갔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박상인 교수

보수가 뚜렷한 원칙 없이 ‘기득권에 집착하는 수구세력’으로만 여기게 자초했다는 분석도 내놨다. 박 교수는 “국가사회주의를 경계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호한다는 보수였지만 시민들에겐 그저 기득권 세력으로만 인식됐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 정부에서 발생한 국정농단 사건과 함께 그간 보수가 우위를 점했던 법치의 가치마저 잃어버린 점도 국민이 보수를 외면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두 학자는 진정 무서운 보수가 되기 위해 진보 세력이 선점한 가치를 잠식하되 디테일(구체성)에서 차별화를 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국가주의, 평등주의라는 도그마에 빠지기 쉬운 현 정부의 진보세력과 차별화해 국가가 아니라 ‘시장’, 결과가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것이 보수의 ‘몰락’이 아니라 변화의 ‘기회’일 수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남북 관계가 평화 국면으로 넘어간 이후 사람들의 관심은 경제협력 방법론으로 옮겨갈 것”이라며 “탈민족·시장주의적 접근을 요구하는 젊은이들의 수요를 보수가 충족시켜준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작은 정부를 지향하되 소액주주의 재산권 보호, 기술 탈취 등 시장 원리를 해치는 불공정 경쟁은 단호히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완전한 인적 혁신과 혁신 운동, 풀뿌리 보수주의의 복원이 보수가 신뢰를 되찾기 위한 전제”라고 지적했다.

황정환/임락근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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