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가 보수를 심판하다

'보수논객' 박형준 교수 대담

보수 죽으란 얘기 아냐
다시 태어나라는 국민의 뜻

한국당 조기 전당대회?
또 밥그릇 싸움 될 것
비대위 체제로 黨 운영해야

“보수세력에 대한 심판이 아닙니다. 보수정당에 대한 심판이죠.”

박형준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58·사진)는 지방선거 개표일 다음날인 1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유한국당의 지방선거 패배에 대해 이같이 정의했다.

그는 “보수가 궤멸된 것이 아니라 보수정당이 궤멸적 심판을 받은 것”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보면 보수가 진보에 밀리는 상황도 아니다. 세계적인 추세도 살리지 못한 낡은 정당이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보수정당이 이대로 죽으란 얘기가 아니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한국당이 거듭 다시 태어나라는 국민적 요구”라고 규정했다.

박 교수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부산 수영구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다음 총선에 출마하는 대신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홍보기획관과 정무수석을 지내면서 ‘MB맨’으로 불렸다.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그는 정의화 전 국회의장의 발탁으로 장관급인 국회 사무총장을 지낸 뒤 현재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보수 논객’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박 교수는 한국당이 보수 이념을 잘못 정의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反)공산주의가 오늘의 대한민국 번영을 이루는 토대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시대의 흐름이 바뀌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며 “한국 보수가 퇴색되고 과거 회귀적인 성향을 답습하면서 국가주의와 관료주의에 물들어 있었다”고 맹비판했다. 그러면서 “원래 보수는 따뜻한 공동체를 지키자는 가치를 갖고 있다”며 “이제는 자유시장경제를 기반으로 국가주의적 보수에서 자유주의적 보수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를 연결해 공동체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 보수 가치인데 이 역할을 진보진영이 선점해 버렸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2004년 한나라당이 총선을 앞두고 단행한 개혁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시대의 담론가였던 고(故) 박세일 서울대 교수를 초빙해 여의도연구소장을 맡겨 당의 개혁안을 주도하도록 했다”며 “당시 소장파 의원들이 많았고 당도 역동성이 넘쳤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서도 그나마 121석이라는 국회 의석수를 지켜낸 것은 합리적 공천의 힘이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혁신과정이 2008년 대선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는 게 박 교수 주장이다. 그는 “이명박이라는 인물이 혜성처럼 등장해 당선된 게 아니다. 탄탄한 집권의 기초를 마련하려 했던 한나라당의 준비과정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홍준표 대표 체제 이후 당 혁신방향에 대해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당 대표를 서둘러 선출하는 것이 최악의 수”라고 조언했다. 그는 “지금 당장 전대를 열면 과거에 당 지도부 경험을 했던 중진의원급 이상 원로들이 당권을 잡겠다고 뛰어들 것인데 밥그릇 싸움하자는 것”이라며 “당권을 누가 잡는지는 전혀 급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6개월이든 1년이든 당내 가치와 비전, 전략을 충분히 협의할 수 있도록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당을 운영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또 “정치하는 사람은 권력욕을 갖는 게 당연하지만 원로 정치인들은 이번만큼은 제발 먼저 각성하고 자기희생을 준비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역대 비대위가 실패로 끝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2년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을 맡아 강력한 리더십으로 집권 초석을 다진 김종인 전 의원 사례가 있다. 보수진영에도 그런 역할을 할 만한 인물이 있다”고 답했다.

글=박종필/사진=신경훈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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