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 논설위원

외교관들 사이에서 불문율처럼 여기는 문구가 “외교는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생존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온갖 협상의 기술과 대화의 기술이 동원된다.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로 한 협상에서는 “상대를 만족시킬 준비를 하는 게 최선의 전략”이라고 했다. 협상 전략가인 조지 로스도 “성공적인 협상으로 이끌기 위해선 상대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크게 얻을 수 있게 그럴듯한 명분과 동기를 줘야 한다”고 했다.

지난 12일 싱가포르 카펠라호텔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 결과를 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한 언론들의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받아내지 못한 데 대해 “김정은에게 농락당했다”고 비판했다. 회담 전 “트럼프 대통령이 수많은 비즈니스 협상을 해온 경험을 정상회담에서 오롯이 녹여낼 것”(CNN)이라고 본 것과는 판이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전 김정은이 ‘겸손 화법·매력 공세’로 나올 것에 대비해 ‘과외’까지 받는 등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정은이 ‘거래의 달인’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을 ‘들었다 놨다’ 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김정은이 미국 민주당 정부를 비판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기분을 맞춘 것이 대표적인 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김정은의 어떤 말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란 확신을 갖게 했나’라는 질문에 “‘클린턴 정권 때 (대북 중유 지원 등) 수십억달러를 받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를 먼저 꺼내더라”고 말했다.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클린턴·오바마 행정부를 비판하며 “과거의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고 말해온 점을 파고든 것이다. 김정은이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기’를 불쑥 내민 것은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관련 있는 ‘카드’로 트럼프의 환심을 사려는 전략이었다는 분석이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이 쓴 《거래의 기술》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나왔을 뿐만 아니라 ‘거래의 목표’까지 치밀하게 설정했다”고 분석했다. 적국과의 대화를 고도의 심리전 차원에서 접근하는 북한으로선 그럴 만하다.

현재로선 김정은이 미국에 준 것보다 받은 게 더 크다는 평가가 많다. “반대급부로 얻는 것이 없다면 절대로 양보하지 말라”는 게 협상의 기본 전략인데, 트럼프가 김정은의 ‘대화의 기술’에 넘어가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중 누가 궁극적으로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생존게임’의 승자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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