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 美·北 정상회담 이후

CVID 없이 체제보장 약속
韓·美 훈련 중단 등 7개 확보

ICBM 생산 중단·유해 발굴…
미국에 양보한 건 3개 불과

트럼프, 퍼주기 논란에 "김정은 신뢰"
실무 협상단은 "이제부터 시작"

싱가포르=박수진 특파원

< 김정은, ‘대북 강경파’ 볼턴과 웃으며 악수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이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12일 싱가포르 카펠라호텔에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악수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13일 미·북 정상회담 소식을 2면에 보도하면서 이 사진을 실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 싱가포르 정상회담(일명 센토사 핵 담판)이 지난 12일 막을 내린 뒤 양측이 얻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미·북 공동합의문과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 등을 종합해 볼 때 김정은의 완승이라는 평가가 많다. 김정은은 체제 보장 약속, 한·미 연합훈련 중단 등 실질 가치가 높은 7개 항목을 챙겼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탄도미사일 엔진시험장 폐기, 전쟁포로 및 실종자 유해 발굴 등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세 가지를 얻는 데 그쳤다는 이유에서다.

“믿을 수 없는 모호한 내용”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싱가포르에서 귀국하는 전용기에서 트위터를 통해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 스스로 후한 점수를 줬다. 그는 “정말로 멋진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이라며 “북한 비핵화에 위대한 진전을 이뤘다”고 썼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전쟁 직전까지 갔던 두 정상이 마침내 만나 5시간여 동안 있으면서 좀 더 실질적인 비핵화로 다가가는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WP)는 13일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은 대단한 성공인가, 엄청난 실패작인가’라는 칼럼을 통해 협상 결과에 비판적인 한국과 미국 여론을 전달했다.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렌코프 국민대 교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문제가 많은 회담이었다”고 비판했다.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대북특사도 북한 전문 사이트인 38노스에 올린 기고문을 통해 “문서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하다”며 “지금 말할 수 있는 반응은 실망뿐”이라고 평가했다.

“이제부터 협상 시작”

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일정표 등 직접적인 족쇄를 피하는 대신 세계 최강국인 미국 정상과 핵 담판을 함으로써 핵(核)국가로서 국제적인 지위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안전보장 약속까지 챙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체제 보장을 위한 단기적 실행 조치로 종전(終戰)선언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 주한미군 철수 등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약속도 ‘덤’으로 얻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해까지 미치광이 평가를 받던 서른네 살의 젊은 지도자인 김정은이 정상회담에서 예상 밖의 노련함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4·27 판문점 선언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회담 전날 “우리의 원칙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로 대량살상무기(WMD)도 포함돼야 한다”고 했지만 공동선언문에 CVID나 WMD 용어는 없었다. 핵폐기와 핵물질·시설의 신고·사찰·검증에 관한 일정도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이 북한으로부터 얻어낸 것은 탄도미사일 엔진시험장 폐기를 통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생산 중단, 전쟁포로 및 실종자 유해 발굴 합의, 핵 관련 고위급 회담 약속이 거의 전부다.

주목되는 고위급 회담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약속 없이 ‘퍼주기’만 했다는 비판과 관련, 김정은에 대한 ‘신뢰’를 강조했다. 그는 정상회담 직후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김 위원장이 그 일(비핵화)을 끝내기를 원한다고 믿는다. 김 위원장을 신뢰한다”고 말했다. 공동선언문에 적시하지 않았지만 그의 비핵화 의지를 믿기 때문에 앞으로 핵폐기 등 비핵화 과정이 속도감 있게 추진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합의문에 적시하지 않은 성과로 핵사찰 인원의 북한 투입 등을 꼽았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신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이란 핵 합의에서 증명됐듯 악마는 합의 사항의 디테일에 있다”고 평가했다. 다음주부터 시작될 미·북 고위급 회담 등 추후 일정이 훨씬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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