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장챌린저호 폭발과 피그만 참사의 공통점은
비판 봉쇄한 '집단적 사고'가 초래했다는 것
'현장'에 눈감은 독선적 정책 독주 돌아봐야

이학영 논설실장

1986년 1월28일, 7명의 우주인을 태운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된 지 37초 만에 공중 폭발했다. 최초의 민간 우주인으로 선발된 여교사 크리스타 매컬리프(당시 37세) 등 탑승자 7명은 발사 과정을 생중계방송으로 지켜보던 수억 명 눈앞에서 순식간에 한 줌의 재가 됐다.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그날 일기장에 “나는 평생 이날을 잊지 못할 것이다. 폭발 장면을 반복해서 봤다. 그때 받은 충격과 공포를 표현할 길이 없다. … 그래도 우주탐험은 계속해야 한다”고 썼다.

레이건 정부는 대참사 원인을 파헤치는 조사에 들어갔다. “내부 비판 의견을 허용하지 않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조직문화의 폐쇄성이 사고를 유발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미국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고체연료 핵심부품인 고무 O-링이 추운 날씨로 인해 갈라지면서 일으킨 연료탱크 화재가 사고 원인으로 밝혀졌다. ‘고무줄 대참사’라는 사실도 황당했지만, 기술진의 거듭된 사전 경고가 철저하게 무시됐다는 것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NASA 연구팀원들은 챌린저호를 쏘아 올리기 전에 O-링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몇 차례 상부에 보고했지만 “확실한 증거를 대라”는 면박에 입을 닫고 말았다.

‘챌린저호 대참사’의 전말은 미국 사회에 27년 전의 ‘피그만 악몽’을 상기시켰다. 존 F 케네디 정부 시절, 쿠바 남쪽 피그만에 1500여 명의 특수부대원을 상륙시키려던 작전이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쿠바를 공산화한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벌인 작전이었지만, 상당수가 사살되고 1000명 이상이 포로로 잡혔다. 미국은 국제적 망신에 더해 쿠바 정부에 배상금까지 물어줘야 했다.
피그만 상륙작전 당시에도 ‘졸속’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금세 뭉개졌다. 대통령과 참모들이 ‘집단적 사고’와 ‘동조화 현상’에 사로잡힌 탓이었다. 미·소 냉전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던 당시, 미국 코앞의 조그만 섬나라 쿠바가 소련의 맹방으로 변신하자 케네디 정부는 평정심을 잃었다. “어떻게 해서든 카스트로를 제거하는 게 급선무”라는 강박관념에 빠졌다. 성급한 작전에 반대한 사람들을 ‘쿠바를 공격할 것인가, 아니면 쿠바가 카스트로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건가’라는 이분법으로 몰아붙였다. 케네디 정부를 덧씌운 ‘집단적 사고’는 학자들에게 더없는 연구사례가 됐다. 카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라는 저서에서 “다른 의견을 내지 못하는 조직은 불행해진다”고 진단했다.

어제와 그제의 두 ‘사건’은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더욱 힘을 실어주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알맹이 없는 리얼리티 쇼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냉전 구도를 깬 만남 자체가 주목받으면서 ‘중재자’를 자임한 문재인 대통령의 위상을 높였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대북 대화 국면의 ‘진짜 영웅(real hero)’은 미·북 간 회담이 이뤄지도록 철저한 물밑 작업을 해낸 한국의 문 대통령”이라고 말한 대로다. ‘6·1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문재인 마케팅’을 앞세워 거둔 압승은 문 대통령의 치세(治世)에 더욱 날개를 달아주게 됐다.

‘문재인 신드롬’이 정책 독주를 더욱 부추기지 않을까 걱정스러워지는 이유다. 최저임금 졸속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논란이 많은 정책을 ‘일부 부작용 때문에 후퇴할 수는 없다’며 밀어붙이는 모습에서 독선의 그림자를 본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터다. 경제도, 외교안보도 쉽게 풀어낼 수 없는 난제들이 첩첩이 쌓여 있다. “우리가 옳다”는 아집의 유혹을 떨쳐내고 다양한 의견, 특히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하지 않는다면 챌린저호와 피그만의 대재앙이 대한민국에서 재현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문 대통령이 작년 5월 취임 직후 청와대 회의에서 참모들에게 당부한 말에는 ‘집단적 사고’와 ‘동조화 현상’을 경계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회의 참석자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의무이고, 심지어 모르면서 황당하게 하는 이야기까지 해야 한다.” 그 다짐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ha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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