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한국감정원

수십년 축적된 빅데이터가 자산
1969년 정부출자기관으로 설립
2006년부터 실거래가 통계 축적

가장 선진화된 가격 공시 시스템
베트남·사우디·태국서 벤치마킹
오차범위 줄이려 2차 고도화 추진

24시간 열람·출력 가능한
부동산 전자거래 운영… 위·변조 차단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베트남 자원환경부 토지행정청의 다오쭝칭 부청장 등 14명으로 구성된 베트남 연수단이 오는 17일 한국감정원을 방문한다. 한국감정원이 담당하는 공시가격 산정 방식을 비롯해 전산시스템, 오랜 기간 축적한 부동산정보(DB) 등을 배우기 위해서다. 이번 방문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베트남 지가산정 역량 강화 및 지가정보시스템 개선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한국감정원은 2016년 11월부터 베트남의 4개 성(빈푹, 박닌, 다낭, 퀀터)을 대상으로 지가 산정 방법 및 모형 개발, 지가정보 및 시스템 구축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의 부동산가격 공시제도의 첫 수출 사례다. 베트남은 경제발전에 따른 부동산 개발 행위가 잇따르면서 체계화된 토지가격 공시제도의 필요성이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형 부동산 가격공시 모형 수출

한국감정원의 공시체계 기법을 배우려는 국가는 베트남뿐만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 평가청, 태국 재무부 토지평가위원회 등도 한국의 공시가격 체계를 벤치마킹하려고 한국감정원과 접촉하고 있다.

해외 국가들이 잇따라 한국감정원의 문을 두드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김세형 한국감정원 기획조정실장은 “유럽과 일본 등에서도 공시 조사업무 시스템이 있지만,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가장 체계적인 전산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국가는 사실상 한국 외엔 없다”며 “중동과 동남아 국가들이 경제발전에 따라 토지 소유권·사용권에 관한 손실보상 등을 둘러싼 갈등이 잦아지면서 한국의 모형을 도입하는 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범 후 반세기를 맞은 한국감정원이 이제 세계 부동산시장의 공시가격 조사업무를 지원할 정도로 도약한 셈이다.

한국감정원은 1969년 ‘국유재산의 현물 출자에 관한 법률’에 의한 정부출자기관으로 설립됐다. 당시 각 금융권의 담보대출 업무를 담당하던 부서들을 통폐합해 만든 조직이 모태다.

가격공시 업무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9년부터다. 당시 부동산 투기에 따른 토지가격 급등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에서 일본의 공시 시스템을 본떠 지가공시제도를 도입했고, 한국감정원도 옛 건설교통부 산하기관으로 이동하면서 공시지가 업무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 시절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자 주택 분야도 토지와 같은 가격공시 제도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2005년 한국감정원이 ‘부동산가격공시법’에 의한 ‘공동주택 가격조사’ 및 ‘주택가격 정보체계 구축’ 등의 관리기관으로 지정된 배경이다. 2006년부터는 실거래가 통계도 축적하고 있다.

부동산 공시업무는 현장 조사를 통한 문서작업 위주로 운영돼 왔으나 한국감정원이 가격공시업무에 관한 부대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한 2013년부터 IT 기반의 공시체계 고도화 사업을 통해 조사업무의 품질 수준이 대폭 향상됐다. 수기(手記) 중심의 공시체계를 전산화로 바꾼 것이 핵심이다. 이후 감정원이 보유한 각종 DB를 일반인 등 제3자도 손쉽게 검색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부동산 가격 산정 과정에 투입하던 대규모 인력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일본보다 한국의 공시체계 수준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베트남 등이 한국 모델을 받아들인 이유다.
민간 부동산정보 산업 육성에도 기여

한국감정원은 수십 년간 축적한 부동산 DB를 민간에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감정원이 직접 운영하는 ‘한국감정원 부동산정보 앱(응용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이 앱을 이용하면 일반인도 토지 및 주택가격은 물론 매물정보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정 가격과 위치에 따른 맞춤형 부동산 정보 검색도 가능하다.

보다 전문적인 부동산 관련 통계를 제공하는 한국감정원 부동산통계정보시스템 ‘R-ONE’도 있다. 누구나 각종 통계자료를 내려받을 수 있다.

부동산업계도 IT를 기반으로 한 한국감정원의 통계 고도화 사업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부동산 앱 업체 ‘직방’은 2015년 서비스를 구축할 때 감정원이 제공한 최신 법정동 주소체계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한국감정원은 또 2015년부터 매년 ‘공공데이터 활용 창업경진대회’를 열어 민간 기업의 부동산서비스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한국감정원은 김학규 원장이 지난 2월 취임한 이후 현행 부동산가격 산정 및 공시 시스템을 또다시 개선하기 위한 2차 고도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주택의 유형별, 지역별, 가격별 공시가격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시도가 그중 하나다. 유은철 연구개발실장은 “단독주택과 공동주택, 대도시와 중소도시, 저가주택과 고가주택 간 격차가 벌어져 있는 공시가격을 현실에 맞게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감정원은 이를 위해 산하 부동산연구원에 총 19명으로 구성한 빅데이터부, 시장분석연구부, 거래정보연구부 등을 신설했다. 인공지능(AI) 시스템을 접목해 공시 산정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고 있다. 도시재생, 재건축 부담금 산정 등 정비사업 분야로도 업무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장종권 홍보실장은 “사업 절차가 복잡하면서도 각종 비리가 끊이지 않는 정비업계가 투명해지도록 감정원이 일조하겠다”고 설명했다.

한국감정원은 2016년 4월부터 국토교통부로부터 부동산 전자거래 운영을 위탁받았다. 전자거래는 종이계약서를 이용하는 대신 온라인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공인중개사가 전자계약서를 작성하면 거래 의뢰인들이 태블릿PC, 스마트폰 등으로 이를 확인하고 전자서명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전자계약서는 공인전자문서센터에 보관돼 24시간 열람·출력이 가능하다. 편리함과 더불어 거래 과정에서 계약서 위·변조가 불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공인인증서를 통해 중개업자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 무자격·무등록자의 중개 행위를 원천 차단한다. 지난해 8월부터 전국 전 지역에서 시행 중이다.

이정선 기자 leew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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