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고율관세 발효에 농축산물·주류·의류·오토바이 등 보복
자동차로 확전할수도…전면전 불사? "치고받는 엄포끝 타협 전망"

미국 철강 관세폭탄 부과 → 유럽연합(EU) 등 보복 관세 맞대응 → 자동차 등으로 전선 확대.
미국 정부가 EU, 캐나다, 멕시코산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함에 따라 글로벌 주요 교역국 간에 보복과 재보복의 악순환이 예고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EU 등의 철강 제품에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을 확정했다고 공포했다.

그러자 해당 국가는 즉시 '보복관세 카드'를 꺼내 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무역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반응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철강에서 시작된 이들 국가 간 '보호무역 장벽쌓기'가 자동차 등 다른 산업으로 확대될 조짐까지 보인다는 점이다.

"무역 전쟁은 좋고 이기기 쉽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과 달리 지금 양상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영국 BBC방송은 분석했다.

◇ 미국 '철강 관세'에 EU 등 즉각 보복 다짐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미국 동부 시간 6월 1일 0시를 기해 EU, 캐나다, 멕시코의 철강 제품에 25%, 알루미늄 제품에 10%의 관세가 부과된다.

이들 국가는 지난해 미국에 230억 달러(약 24조8천억원)어치의 철강과 알루미늄을 미국에 수출했다.

미국 전체 수입액 480억 달러(약 51조7천억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미국의 발표가 나오자 관련 국가는 일제히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의 장클로드 융커 위원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EU도 미국 조치에 맞서 똑같은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캐나다와 멕시코도 곧바로 보복 조치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캐나다는 166억 캐나다달러(약 13조8천억원)에 해당하는 미국산 철강, 알루미늄 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또 요거트, 위스키, 커피, 맥주 등에도 관세 부과 가능성을 열었다.

멕시코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가 밀집한 지역을 타깃으로 삼았다.

철강은 물론 돼지고기, 사과, 소시지, 포도, 치즈 등 농축산물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품목은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지지층이 몰려 있는 지역에서 주로 생산된다.

멕시코의 조치는 오는 11월 미 의회 중간선거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EU 또한 미국이 철강 관세부과를 강행하면 오렌지 주스, 청바지, 오토바이 등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기로 하고 이미 대상목록을 정한 바 있다.

◇ 자동차·WTO로 전선 확대?
양측의 통상 보복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이 자동차 등으로 무역 전선을 확대할 의지를 보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수입자동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꺼내 들었다.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에게 수입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끼치는 영향을 판단하기 위한 조사를 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상무부가 수입차가 미국의 안보를 저해할 위협이 있다고 판단을 내리면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90일 이내에 수입 규제, 관세부과 등 조처를 할지 최종 결정한다.

미국이 자동차 관세 카드를 꺼내 들면 상대국 역시 비슷한 규모로 보복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는 연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고 철강과 달리 소비자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제품이라 이 같은 통상보복 난타전이 펼쳐질 경우 세계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마리안 슈나이더-펫싱어 연구원은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에 자동차 관련 관세 보복전이 미국과 EU 간 다음 차례 무역갈등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한편에서 철강 관세를 둘러싼 미국과 EU 등의 싸움은 양자 보복 수준을 넘어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에서 공식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EU 등은 이번 미국 철강 관세부과 건을 WTO에 제소해 정식으로 보복관세를 물리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의 결정은 국제무역규범 위반으로 불법일 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실수"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또 트럼프 대통령에게 WTO의 규범을 강화하기 위해 EU, 중국, 일본과의 협상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 무역 전면전 가능성 낮아…"결국 타협할 것"
그럼에도 이번 사태가 전면적인 무역전쟁으로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앞서 중국과의 무역갈등에서처럼 양측은 얻어낼 수 있는 최대치를 꺼내 엄포를 놓은 뒤 협상을 벌이면서 한 발씩 물러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BBC방송은 앞선 통상마찰의 예를 살펴보면 양측의 수사(修辭) 수위가 높아지고 위협이 진행되다가 결국 상황이 부드러워진다는 분석을 내놨다.

BBC방송은 "지금까지 전면적 무역 전쟁은 빚어지지 않았다"며 "트럼프 시대에는 이런 식으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로스 장관은 최근 파리에서 열린 OECD 무역포럼에서 "미국은 무역 전쟁을 쫓지 않는다"며 "만약 갈등이 고조된다면 이는 EU가 보복을 결정했기 때문"이라며 미국은 '확전'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히기도 했다.

미국으로서는 관세부과가 결국 가계 부담과 인플레이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경제 전문가들과 미국 기업들은 철강 가격이 높아지면 서플라이 체인에 악영향을 주고 미국 내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고 BBC 방송은 전했다.

미국 의회에서도 이번 철강 관세부과 조치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들 국가가 미국의 주요 동맹이라는 점을 부각하면서 무역 불균형의 근본 원인인 중국과는 다른 대응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공화당 소속인 하원 세입위원회의 케빈 브래디 위원장은 성명을 내고 "철강과 알루미늄의 불공정 무역에 관해서는 멕시코, 캐나다, 유럽이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문제는 중국이며 이번 관세는 잘못된 과녁을 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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