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의 ‘채권왕’으로 불려온 빌 그로스 야누스 헨더슨 그룹 포트폴리오 매니저가 ‘이탈리아발 퍼펙트스톰’에 망신을 당했습니다. 47년 투자 인생에 있어 기록적 손실을 본 최악의 하루를 보낸 겁니다.

그로스가 2014년 출범시킨 21억달러 규모의 야누스 헨더슨 글로벌 비제약형 채권펀드는 29일(현지시간) 3%를 웃도는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하루 기준 펀드 출시 이후 최대 손실에 해당합니다. 이에 따라 연초 이후 손실폭은 5.9%로 확대됐습니다.
이탈리아의 총선 재실시 가능성이 커지고, 반유로화를 부르짖는 오성운동과 동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둘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탈리아 국채 금리는 치솟고,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 금리는 급락하는 사태가 벌어진 탓입니다.

이탈리아 2년물 국채 금리는 이날 하루 189.4bp 오른 2.652%로 올라 1992년 이후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습니다. 반면 미국 10년물 금리는 15.9bp 내린 2.772%까지 떨어졌습니다. 브렉시트 투표가 있었던 2016년 6월 24일 이후 가장 큰 하루 낙폭을 보였습니다.

야누스 헨더슨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낸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말 기준 펀드의 포트폴리오에서는 이탈리아물은 전혀 없었습니다. 대신 애트나, 타임워너 등이 발행한 단기물 회사채가 차지한 비중이 절대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이탈리아 채권 값 하락(금리 상승)보다는 미국 채권 값 급등(금리 하락)에 대비하지 못해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로스는 그동안 30년 강세를 보여온 미 채권 시장의 상승세가 끝났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포트폴리오에서 단기물 채권 비중이 큰 것도 이 같은 맥락입니다.

올들어 미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 속에 단기 국채 수익률이 장기물보다 가파르게 상하면서 그동안 그의 예상은 적중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발 막장 정치드라마로 인해 명성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사실 이탈리아의 정치는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을 만큼 극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도 이날 고객에 보낸 메모에서 “이탈리아에서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가까운 미래조차 알 수 없다”고 인정했습니다.

지난 3월 4일 총선 후 3개월 가까이 무정부 상태가 지속된 이탈리아 정국이 31일 잠시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연정 구성 가능성이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최대 정당인 오성운동은 극우정당인 동맹과의 연정 구성을 재시도하겠다고 밝혔다. 연정 출범 무산의 단초가 된 경제장관 자리에 새 사람을 앉히는 방안을 고려하겠다는 겁니다.

이에 맞춰, 과도 정부를 이끌 총리 후보로 임명된 카를로 코타렐리 지명자도 각료 구성 작업을 보류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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