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정치적 다원주의 없으면 힘들어
북한이 수십년간 만든 핵 포기할지도 의문

주용석 국제부 차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7일 트위터에 “북한이 언젠가는 경제적, 재정적으로 위대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도 이 점에서 나와 같은 의견”이라고 했다. 6월12일로 예정된 미·북 정상회담이 양측의 힘겨루기로 취소될 뻔했다가 북한이 꼬리를 내리면서 다시 열리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직후였다.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수용하면 그 대가로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을 약속하겠다는 메시지였다. 일각에선 미국과 북한이 이미 ‘빅딜’에 합의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최상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찜찜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는 회고록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김정은은) 핵을 포기하는 순간 자신의 권력도 유지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북한이 결코 핵을 폐기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회고록에 따르면 북한은 올해를 ‘핵보유국의 지위를 공고화하는 평화적 환경 조성에 들어가야 하는 시기’로 정했다. 이를 위해 ‘핵실험 동결을 선언하고 장기적으로 한국과 미국에 북한 핵에 대한 면역력을 조성’하기로 했다. 북한이 지난해까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속도를 내다 올해 갑자기 ‘대화 모드’로 돌아선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태 전 공사는 지적했다.
김정은이 직접 발표한 올해 신년사를 봐도 핵 폐기의 단서를 찾긴 힘들다. 북한은 지난해 성과로 ‘국가 핵무력 완성’을 꼽으며 ‘책임있는 핵 강국’으로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지난달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 노선을 ‘경제건설 집중’ 노선으로 전환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핵 개발 완료를 전제로 한 것이다.

북한은 내부적으론 ‘고난의 행군’, 외부적으론 미국은 물론 ‘혈맹’인 중국의 반대까지 무릅써가며 수십 년에 걸쳐 핵을 개발했다. 2012년엔 헌법에 ‘핵 보유국’ 지위를 명시했다. 1994년 미국과의 제네바 합의와 2005년 6자회담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주변국이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을 약속하는 ‘딜’이 이뤄졌지만 결국 북한의 ‘시간끌기’로 끝났다.

이번엔 다를까. 어느 때보다 기대가 높기는 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취소’ 카드를 꺼내자 북한이 곧바로 몸을 낮춰 대화 의지를 보이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SOS를 쳐 예정에 없던 남북한 정상회담까지 하면서 그런 기대를 키웠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 2차 남북 정상회담을 한 뒤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분명하다”고 했다. 하지만 “북한이 고립과 위기에 빠질 때마다 어김없이 꺼내 든 카드는 남북회담이었다”(태영호 회고록)는 지적도 곱씹어봐야 하지 않을까.

설령 북한이 핵을 폐기해도 ‘경제적으로 위대한 나라’로 가는 길은 험난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도 (경제 기적을 이룬) 한국과 같은 민족”이라고 했지만 남북은 차이가 있다. 대런 애스모글루 MIT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하버드대 교수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경제적 인센티브를 창출하고 사회 전반에 정치권력을 분산시켜 주는’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의 유무가 남북한의 운명을 갈랐다고 분석했다. 간단히 말해 시장경제와 정치적 다원주의가 남북의 성패를 좌우했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과연 이것을 수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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