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대미비난→美회담취소발표→北유화메시지→美선회'…文, 정세급박 판단
한반도 요동치자 핫라인 뒤로하고 '서훈-김영철 라인' 가동해 회담 준비한 듯
임종석·정의용·조명균 등 극소수만 알았을 듯…극도 보안 유지

사진=청와대 제공

26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회담은 극도의 보안 속에 진행됐다.

이날 이전까지 세 차례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이 국민에게 사전 공개되지 않고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청와대는 정상회담이 끝난 지 2시간 50분이 지난 오후 7시 50분에 회담 개최 사실을 알렸다.

그만큼 상황이 급박했다는 의미인 셈이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출입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정상회담 개최 사실과 함께 27일 오전 10시 문 대통령이 회담 결과를 직접 발표할 것이라고 공지했다.

갑작스러운 회담 사실 공개에 기자들의 질문이 쇄도했지만, 청와대 관계자들은 일절 응대하지 않고 '대통령 발표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대한민국의 한 대통령이 북한 최고 지도자와 두 차례 이상 회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불과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것도 파격적이다.

문 대통령은 올가을 평양을 방문해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기로 이미 약속한 바 있다.

이날 회담은 정부 내 극소수만 알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청와대에서는 임종석 비서실장과 정의용 안보실장 정도가, 정부에서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이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정부 관계자라 하더라도 회담 개최를 인지한 사람이 많을수록 사전 유출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극소수만이 이번 회담을 추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문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각) 워싱턴DC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김 위원장의 의중을 설명하면서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조율했고, 김 위원장은 약속대로 미국인 억류자를 석방하고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단행하면서 현시점이 남북 정상 간 '핫라인' 가동 적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북한이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의 발언과 탈북 여종업원 문제, 한미 공중연합훈련인 맥스선더 등을 이유로 대남·대미 비난 수위를 올리면서 한반도에 이상기류가 일던 터라 남북 정상 간 직접 통화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대미 비난을 이유로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하자 북한이 유화 메시지를 내고, 또다시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여는 쪽으로 선회하는 등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며 살얼음판 국면이 지속하자 문 대통령이 핫라인 통화보다는 직접 만남을 결단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경우 오랜 시간 정상회담을 준비한 게 아니라 이미 구축된 '서훈-김영철 라인'을 통해 급박하게 정상회담 테이블을 마련했을 것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날 회담장에는 서 국정원장과 김 통일전선부장만이 각각 배석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이 이미 핫라인 통화를 통해 김 위원장과 이날 회담을 예약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지만, 청와대는 일단 이를 부인하고 있다.

결국 북미 간 중재역을 자처하는 문 대통령이 이번 주 초 방미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진심'을 설명했듯이, 이날은 김 위원장을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한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현 상황에 대한 섬세한 컨트롤을 소홀히 하면 자칫 의도와 달리 파국으로 치달을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을 만난 지 사흘 만에 북한 최고 지도자를 만나 북미대화의 '중재자'이자 '촉진자'로서 역할을 수행한 셈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무려 15번의 전화통화를 했지만, 1박 4일이라는 무리한 일정을 감수하면서까지 워싱턴으로 날아간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문 대통령이 현 상황을 한반도 비핵화 여정의 최대 갈림길로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연합뉴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