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 대표시절 혹독한 훈련, 후학 양성·체육행정 자양분 됐죠"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저 조재깁니더, 허허~.”

함지박만 한 손을 내민 거구의 사내. 키 190㎝가 넘는 그에게서 하회탈 같은 파안대소가 터져 나오지 않았다면 그저 입을 쩍 벌린 채 그의 압도적 풍채에 말문이 막힐 뻔했다. 조재기 신임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68). 올 1월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유도 동메달)으로는 최초로 이사장이 된 그를 취임 116일째인 지난 17일 서울 송파동 석촌호수 근처 남도 한식집 ‘가시리’에서 만났다. 식당 한가운데가 꽉 찼다.

‘불가능은 없다’ 무한도전 인생

1970년대 그는 ‘국내에는 적수가 없다’는 말을 자주 듣던 유도계 스타였다. 40여 년이 지나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하루 한 시간씩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빼먹지 않는다”는 그는 음식을 가리진 않되 남도 음식과 육류를 좀 더 즐긴다고 했다.

전문 스포츠인으로는 태권도 선수 출신인 김주훈 전 이사장(9대)에 이어 두 번째지만 올림픽에서 메달까지 딴 체육인이 이사장에 오른 것은 그가 처음이다. 조 이사장은 “학창시절부터 체육단체 수장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꿈이 이뤄진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이론과 행정, 실기 등 체육행정인으로서 3박자를 모두 갖췄다는 평을 듣는다.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올림픽 유도 무제한급에서 동메달을 딴 뒤 대학교수(동아대)로 변신해 LA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하형주(56·동아대 교수)를 길러내는 등 후학 양성에 힘썼다. 체육행정가로도 일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 유도 담당관, 1988년 서울올림픽조직위 사무차장,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등이 그가 거쳐간 자리다. 37년간의 후학 양성을 마감한 2015년부터는 모교인 동아대에서 명예교수로 일해왔다.

좋은 음식, 좋은 인연으로 ‘인생공부’

한 상 가득 음식이 차려지자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홍어삼합. 점심 인기 메뉴인 보리굴비정식을 시키면 곁들여지는 요리다. 7년 묵힌 전남 해남산 묵은지의 칼칼한 맛과 아삭한 식감, 구수한 돼지수육과 쫀득한 홍어 절편이 삼삼하게 어우러졌다. 보리굴비가 구워지는 동안 봄나물 초무침을 얹어 첫술을 뜬 그에게 가시리와의 인연을 물었다. 경남 하동 사람이 남도 음식에 입맛을 들인 이유가 궁금했다.

“대선배인 이연택 전 대한체육회 회장이 전북 고창 출신입니다. 체육회 일로 그분이 뭔가 의논할 게 있으면 꼭 여기로 저를 부르곤 했는데, 여기서 좋은 아이디어와 사업 거리가 많이 쏟아졌어요. 이후 단골이 됐죠.”

좋은 인연을 만들어 준 사랑방이자 좋은 사업으로 연결된 회의실, 일의 해법을 찾아낸 공부방 같은 장소가 가시리라는 설명이다.

보리굴비가 나오자 먹는 법을 손수 보여주겠다고 조 이사장이 소매를 걷었다.

“다른 집과 굴비 먹는 방법이 조금 달라요. 굴비를 녹차물에 살짝 씻어서 염분을 빼는 게 좋습니다. 그다음 완도산 김무침을 굴비살에 조금 얹어서 드셔 보세요. 풍미가 남다를 겁니다.”

진짜 그랬다. 겉은 바삭하면서도 속은 꾸덕한 굴비와 김은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보성산 녹차로 우려낸 냉물은 삭히고 말린 생선살의 비릿한 맛을 잡아줘 감칠맛을 더했다.

‘죽음의 냄새’ 매일 맡은 유도 대표선수 시절

그는 늘 ‘불가능은 없다’고 말하는 무한도전맨이다. 온 정신과 온 몸을 던지면 다 이뤄진다는 믿음의 심지가 깊다. 유도 국가대표 시절 매일 ‘죽음의 냄새’를 맡으면서 극한훈련을 견뎌낸 자신감이 자산이다. “두 시간을 쉼 없이 엎어치고 메치고 들고 뛰면 딱 5㎏이 빠집니다. 이게 몸무게의 5% 정도인데, 다 물이에요. 몸에서 수분이 7% 빠지면 죽습니다.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까지 훈련한 뒤 그날 저녁엔 때려먹어서 5㎏을 다시 불리는 일을 반복했죠.”

하루를 마치면 도복에서 지독한 냄새가 풍겼다. 그는 그걸 데스 포인트(death point)까지 가본 사람만이 맡는 ‘죽음의 냄새’라고 표현했다. “죽을 각오로 하는데 뭔들 못 하겠느냐”는 게 그의 말이었다.

아삭이 고추를 된장에 푹 찍어 한 입 베어 문 그가 달걀물을 입혀 지져낸 소고기 육전을 권했다. 초간장이 살짝 배어든 육전의 향이 입안을 향긋하게 감쌌다.

몬트리올올림픽 동메달 때의 일화가 궁금했다.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해방 후 한국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던 것과 그의 기적적인 메달이 겹쳐서다.

“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3, 4위전에서 죽을 힘을 다해 이기고 시상대에 올랐는데, 아무도 없는 거예요. 기자들이 다 양정모 금메달 소식을 듣고 빠져나간 거죠.”

당시 시상식 사진 한 장 챙기지 못한 배경이다. 그는 얼마 전 자신을 준결승에서 이긴 일본의 우에하라 선수 집을 방문했다가 당시 시상식 사진을 처음 접했다. 조 이사장은 “‘하면 된다’는 인생철학을 확고하게 다지는 계기가 됐으니 서운하지 않았다”며 허허 웃었다.

올림픽에 아예 나가지 못할 뻔한 아찔한 경험에 비해서는 엄청난 성취였기 때문이다.
“당시 유도 레슬링 등 투기종목에서 메달 가능성이 높은 경량급 선수만 내보내기로 한 정부 결정 때문인데, 90㎏이 넘었던 제가 제외된 거죠. 여러 사람을 내보낼 돈이 없었기도 했고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백방으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구명 청원’에 나섰고, 결국 캐나다행 비행기 티켓을 손에 쥐었다.

“몬트리올대회 4년 전인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북한이 금메달(사격)을 땄고 우린 동포 한 명이 은메달을 따는 데 그쳤어요. 그래서 악이 오를 대로 올라 있었는데, 또 북한이 몬트리올에서 먼저 금메달(복싱)을 딴 겁니다. 선수단에 비상이 걸렸죠.”

라이트헤비급에서 4위에 그쳐 실의에 빠져 있던 그는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 일정을 취소하고 예정에 없던 무제한급 출전을 선수단장에게 졸랐다. “예민한 상황에서 나갔다가 메달을 못 따면 오히려 욕만 먹는다”며 말리는 동료들에게 ‘무조건 금메달을 따겠다. 출전하지 못하면 캐나다로 밀입국해 평생을 조용히 파묻혀 살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결단의 표시로 삭발까지 했다.

금메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동메달 하나로도 인생이 달라졌다. 고향 하동에서 농사 짓는 부모님이 하동군수가 내준 관용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고, 그는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했다. 지금의 서울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에 달하는 돈이 격려금으로 들어왔다.

“한 번도 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고 말한 그가 “선수가 질 때가 언제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가 자답했다. “돌이켜보면 생각이 많았던 때예요. 머릿속에 잡념이 들었을 때 꼭 상대방의 기습공격을 받고 포인트를 내줬거든요. 올림픽 때 일본 선수에게 져 결승 진출이 좌절됐을 때도 그랬고요. 완전한 몰입, 무아지경이어야 이깁니다.”

100세까지 스포츠가 일상인 나라의 터 닦는 꿈

공단은 내년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조 이사장은 “국민이 100세까지 행복하게 운동할 수 있는 체육복지 확대에 주춧돌을 놓고 싶다”고 말했다. 생활 밀착형 체육시설 확충, ‘국민체력100’사업 활성화, 스포츠 지도사 양성 및 배치 등의 사업을 더 확대할 계획이다. 국민체력100사업은 체력 측정부터 운동 처방까지 원스톱으로 제공해 국민이 100세까지 스포츠를 안전하게 즐길 수 있게 하자는 과학적 체력관리 프로그램이다. 전국에 이 서비스를 위한 체력인증센터 42곳을 확보했는데, 대폭 늘려나갈 계획이다.

조 이사장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소비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보편적 스포츠 복지를 중시한다. ‘퍼주기 복지’가 능사가 아니라는 건 이미 프랑스에서 한 실험 결과 입증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처음엔 무료 강습 스포츠클럽에 회원이 열 배 많이 몰렸어요. 100달러를 내야 하는 클럽은 텅텅 비었고요. 1년 뒤엔 상황이 거꾸로 변했습니다. 회비를 받은 클럽에 열 배 더 많은 사람이 남아 있었거든요.”

이를 응용한 게 ‘8만원론’이다. 스포츠클럽 회원이 1만원을 회비로 내면 시·도 체육회가 1만원의 지원금을 얹어 2만원을 만드는 게 시작이다. 이 2만원에 대한체육회가 2만원을 더해 4만원을 만들고, 문화체육부가 4만원을 보태 8만원을 만들면 ‘매칭 펀드’ 방식 기금이 완성된다. 1만원을 낸 클럽 회원은 그 여덟 배인 8만원 가치의 스포츠 복지를 누리게 되는 셈이다. 이런 클럽이 전국에 수천, 수만 개 생기게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또 다른 관심 분야는 일자리다. 체육지도사와 스포츠전문강사 양성, 스포츠산업 청년창업 지원 등을 통해 2022년까지 일자리 9만 개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이다.

국민이 동참해주길 바라는 소원도 하나 있다. 응원구호 ‘파이팅’을 ‘으랏차차’로 바꾸자는 제안이다.

“예전엔 스포츠가 전쟁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일제강점기 때 들어온 응원구호가 ‘화이또’였거든요. 일본도 이제는 파이팅 대신 ‘간바레(힘내라)’라고 외칩니다. ‘으랏차차’ 좋지 않나요? 순우리말이고 어감도 좋고요. 하하.”

■ 체육진흥공단 기금 1.5兆… 평창 경기장 건립 등 지원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정식 명칭이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뒤 남은 잉여금 3521억원이 출발점. 이를 토대로 사업을 키워 지난해까지 28년간 10조443억원을 생활체육, 장애인체육, 청소년육성 등에 지원했다. 스포츠토토, 경륜, 경정, 올림픽파크텔 운영 등을 통해 얻은 수익이 재원이다. 지난해 매출 7조원을 올려 기금 1조5750억원을 조성했고 모두 체육복지에 썼다. 평창동계올림픽에도 경기장 건립 등을 위해 1조3200억원을 지원했다.

“모두 적자를 낼 것이라고 했지만 서울올림픽은 보란 듯이 흑자가 났습니다.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죠.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인 제가 그 올림픽 유산으로 만든 기관을 책임지게 됐다는 게 무슨 운명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1950년 경남 하동 출생
△부산 대동고 졸업
△한양대 이학 박사(스포츠경영학)
△몬트리올올림픽 유도 동메달(1976)
△동아대 체육학부·스포츠과학 대학 교수(1978~2015)
△서울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 유도 담당관(1986)
△서울올림픽조직위 사무차장(1986~1988)
△동아대 학생처장(1999~2001)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2008~2009)
△한국스포츠산업경영학회 회장(2008~2010)
△동아대 스포츠과학대학 명예교수(현)

■ 조재기 이사장의 단골집 가시리 석촌호수점
푸짐한 南道 정식… 단골 회식장소로 유명


가시리는 남도 음식을 비싸지 않게 맛볼 수 있는 한식집이다. 인기 메뉴인 보리굴비정식을 2만원부터 5만5000원까지 주머니 사정에 맞춰 선택할 수 있다. 점심시간에 회사원들이 주로 찾는 2만원짜리 점심특선을 시키면 기본 밑반찬 열 가지 외에도 나물무침 두 종류, 2색전, 홍어삼합이 나와 하나씩 맛보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린다. 신선한 재료를 전남 보성, 완도, 벌교 등지에서 가져와 남도 음식 특유의 푸근한 맛과 향이 잘 살아있다는 평을 듣는다. 저녁 메뉴인 가시리정식(A코스 5만5000원, B코스 3만5000원)에는 육전과 육사시미, 민어찜 같은 별미 요리가 추가된다. 벌교산 꼬막 같은 제철요리가 곁들여진 A코스가 가장 비싸다. 이경희 가시리 석촌호수점 대표는 “양이 푸짐해 근처 건설회사 등의 회식 장소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132㎡ 규모의 석촌호수점은 50석이 마련돼 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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