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을 세우는 화폐금융론

정대영 지음 / 창비 / 371쪽 / 1만8000원

1970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과 독일, 일본의 화폐가치는 다른 길을 걸었다. 한국은 소비자물가가 21배 오르고 원·달러 환율도 4배 가까이 상승했다. 반면 독일은 물가가 3배 정도 상승하는 데 그쳤고 달러 대비 마르크화 환율은 3분의 1로 떨어졌다. 독일 돈의 가치가 미국 돈에 비해 3배 커진 것이다. 일본도 독일과 비슷한 변화를 보였다.

이와 같이 과거 50년 가까운 기간의 화폐가치 변화를 보면 한국에서 정액 소득자, 금융자산 소유자, 채권자, 일반 소비자 등 주로 금융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은 큰 손실을 봤다. 반면 부동산 등 실물자산 보유자, 채무자, 수출업자 등은 이익을 보거나 돈을 쉽게 벌 수 있었다. 경제가 필요로 하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이 공급돼 돈의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경제 성장을 이뤄 선진국 문턱에 이르렀지만 금융 분야는 상대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금융으로 돈을 번 사람도 적었고 은행 보험 증권사 등 국내 금융회사들도 ‘우물 안 개구리’라는 혹평을 듣는다. 심지어 금융이 실물부문에서 만들어진 부가가치를 빼앗아 가는 산업이며, 금융산업이 발전할수록 불평등이 심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은행에서 34년간 일하며 금융안정국장 등을 지낸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은 《관점을 세우는 화폐금융론》을 통해 금융에 관한 오해와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는다. 금융의 기초와 역사부터 가상화폐 등 최근 이슈까지 일반인들이 금융에 관해 알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쉽게 풀어썼다. 금융 지식으로 돈을 갑자기 잘 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돈을 쉽게 잃지 않을 수 있으며, 국민 경제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길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은 금융의 발생과 진화, 돈 바로 알기, 금융시장과 금융상품, 국제금융, 위험관리와 위기관리 등 다섯 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금융의 발생 과정을 살펴보며 금융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 자선과 약탈 사이에서 발생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는 금융행위가 생겨난 이후 이자를 과도하게 부과하는 약탈적 성격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대 함무라비 법전부터 중세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고리대금업에 대한 문제제기는 끊이지 않았다. 저자는 다양한 금융회사가 서로 경쟁하고 잘 작동하게 해 금융이 약탈과 자선의 중간에라도 머물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금융시장은 자본주의의 기본 인프라로 실물경제가 성장하는 데 주춧돌 역할을 한다. 저자는 여러 가지 금융상품과 금융시장의 특징을 소개하며 국민경제의 생산성이 좋아지고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는 금융시장의 발전 방향에 대해 알아본다.

‘국제금융’ 부문에서는 한국 금융의 국제화 방안을 탐구한다. 저자는 한국의 금융산업과 금융시장이 외국의 금융회사와 투자자들에게 충분히 개방됐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한국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 원화의 국제화, 국내에 국제 금융시장을 만드는 것까지 이뤄져야 진정한 금융 국제화가 완성된다고 얘기한다.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은 아직 부진하고, 원화의 국제적 통용은 제한돼 있다. 국제 금융시장을 갖는 것도 요원하다.

저자는 원화에 대한 투기세력의 공격, 자본의 급격한 유출입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금리 정책과 환율 정책의 투명성과 신뢰성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리 정책이 경기부양을 위한 내수 활성화 같은 특정 목표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자산거품 등 경제의 불균형이 발생해 투기세력이 공격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