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아직 시간 남아"
23일 北에 명단 다시 전달 예정
취재진 방북 의견접근 가능성도

핵실험장 폐쇄는 대외선전用?
밖으로는 비핵화 의지 과시
對南 압박 고삐 죄려는 의도

22일 북한 원산에 도착한 외신 기자들이 방송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행사(23~25일)를 취재하려는 한국 기자단의 방북이 무산됐다. 북한이 약속과 달리 한국을 제외하고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 등 4개국 외신기자의 취재만 허가해서다.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을 압박해 대미(對美) 협상력을 키우려는 북한의 움직임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 뺀 4개국 기자단만 방북

통일부는 22일 판문점 채널을 통해 우리 측 기자단 명단을 통지하려 했으나 북측 연락관은 ‘지시받은 게 없다’며 접수를 거부했다. 북한은 지난 16일 한·미 연합훈련을 빌미로 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데 이어 18일부터 우리 측의 풍계리 취재 협조 요청에 답을 하지 않고 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북측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행사에 우리 기자단을 초청했음에도 후속 조치가 없어 기자단 방북이 이뤄지지 못한 데 대해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통일부는 23일 우리 취재진 명단을 북측에 다시 전달하고 북측이 이를 수용하면 평창 동계올림픽의 전례에 따라 남북 직항로를 통해 원산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외신기자들 北 입국 수속 > 북한의 핵실험장 폐쇄 행사에 초청받은 외신기자들이 22일 원산 갈마공항에 도착해 입국 수속을 밟고 있다. /베이징신화연합뉴스

◆속절없이 당한 ‘저자세 외교’

북한의 협상술에 속절없이 당하고 있는 정부를 향해 시종일관 ‘저자세 외교’를 펼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행사 예정일을 하루 앞둔 22일 우리 측 기자단을 제외한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 4개국 외신기자단의 방북만 허락했다. 우리 측 기자단 8명은 이날 이른 아침부터 북한으로 가는 고려항공 전세기가 출발하는 베이징 공항에서 대기했다. 기자단은 북한의 입장이 막판에 바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전날부터 베이징을 찾아 북한의 답변을 기다렸다.

그러나 통일부 당국자가 이날 “오전 9시 판문점 개시 통화에서 북측 연락관이 우리 기자단 명단을 접수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우리 측 기자단의 북한 전세기를 통한 방북은 무산됐다. 기자단은 외신기자단을 태운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지켜본 뒤 철수했다.
미·중·영·러 4개국 외신기자단은 이날 오전 고려항공 전세기를 통해 원산에 도착했다.

◆北 “남북 대화 재개 보장 못해”

북한은 우리 정부의 유감 표명에 일절 대응하지 않고 오히려 한·미 연합훈련 때문에 남북한 고위급회담을 재개하지 않겠다며 한국 압박 공세를 이어갔다.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을 통해서는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행사 홍보에 집중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미국과 영국 등 각국 언론 매체명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북한의 지난 12일 외무성 공보 내용을 보도한 사실을 전했다.

북한이 논란 끝에 행사를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한 것은 내달 12일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핵실험장 폐쇄를 통해 비핵화 의지를 국제적으로 과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한국만 배제함으로써 미국의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한국을 압박하는 고삐는 늦추지 않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일각에선 북한이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지켜본 뒤 우리 측 취재단의 방북 여부를 막판에 결정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북한은 우리 정부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였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이날 “조·미(북·미) 대화에서 진전이 이뤄지면 북남 고위급 회담을 중지시킨 사태도 저절로 해소되리라고는 볼 수 없다”며 “북을 겨냥한 전쟁 소동이 계속된다면 고위급회담 중단 상태도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미·북 회담의 판을 흔들지는 않으면서도 우리 측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 현 상황을 관리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북한은 또 한·미 연합훈련 등을 이유로 남북 고위급 회담을 거부하는 한편 2016년 중국 유경식당에서 일하다 탈북한 여종업원들의 송환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공동취재단/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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