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실험장 폐쇄 이틀 전까지
北, 행사 공개 묵묵부답

베이징 도착한 우리 취재단
북한 비자 발급 못 받은 채
北 대사관 근처서 대기

조명균 통일 "기자단 방북
북측의 긍정 조치 기대"

국내외 취재진이 21일 중국 베이징 북한대사관 앞에서 입북 비자 발급과 관련한 설명을 듣고 있다. 풍계리공동취재단

북한 비핵화의 신호탄이 될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23~25일)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북한은 행사 이틀 전인 21일 판문점 연락채널 마감 시간까지 행사 진행과 우리 언론의 취재 허용 여부에 대해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북한이 묵묵부답인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는 “판문점 채널을 통해 북측의 답을 기다리겠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측 기자들은 이날 북한이 지정한 5개국 취재진의 집결지인 중국 베이징에 도착해 온종일 북한의 대답을 기다렸다.

◆외신에만 비자 발급한 북한

통일부는 이날 “오후 4시로 예정된 판문점 연락채널 가동이 끝났고 우리 측 기자단 명단은 북측에 전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오후 4시 이후에도 북측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북측이 거부했다. 그러나 통일부는 22일 판문점 채널을 가동하는 만큼 상황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우리 측 취재진 8명 중 통신 취재단 4명은 이날 오전 김포공항에서 출발해 북한이 지정한 5개국(한국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 취재진의 집결지인 베이징에 도착했다. 나머지 방송 취재단 4명도 이날 오후 출발해 취재단에 합류했다. 이들은 곧바로 북한대사관으로 이동해 방북 비자를 신청할 계획이었지만 정부의 요청으로 일단 보류했다. 취재단은 이날 오후 내내 북한대사관 근처에서 대기했다.

정부는 온종일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통일부는 이날 오전 판문점 채널이 열리자마자 우리 측 기자단 명단을 재차 통보했으나 북측은 확인을 거부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통일부는 북한의 답변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날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6회 통일교육주간 기념식’에 참석한 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에 우리 언론이 참석해 취재하는 문제는 지난 남북한 정상회담에서 북측이 직접 언급한 것”이라며 “정부는 기자단의 방북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북측도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해 긍정 조치를 취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남측 취재단을 제외한 채 행사를 진행 할 가능성에 대해선 “일단 지켜보겠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자들과 달리 미국 CNN방송과 AP통신 등 외신 기자들은 이날 북한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았다고 일본 NHK방송이 보도했다. 외신 취재진은 22일 오전 북한 전용기를 타고 원산 갈마비행장으로 이동할 계획이다. 외신과 별도로 한국 언론만 따로 가거나 우리 측의 행사 취재가 불투명해질 수도 있다.
◆반복되는 북한의 약속 파기

북한이 약속을 파기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북한은 올 들어 먼저 자진해서 약속한 뒤 한국이나 미국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 한 약속을 번복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15일 우리 측에 고위급회담을 열자고 제안했다가 15시간여 만인 16일 새벽 한·미 공군의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를 문제삼아 회담을 무기 연기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1월19일에는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예술단 사전점검단 방문을 하루 앞두고 오후 10시께 우리 측에 돌연 파견 취소를 통보했다. 그러다 우리 정부 고위당국자들이 직접 언론에 추측성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한 뒤에야 파견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또 같은 달 29일에는 남측 언론 보도를 거론하며 금강산에서 열기로 했던 남북 합동문화공연 행사를 1주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취소하겠다고 오후 10시께 일방 통보했다.

북한이 한밤중에 갑작스럽게 일정 취소를 통보해올 때마다 우리 정부는 ‘북한 달래기’에 나섰다.

이번에도 북한의 이 같은 행태는 22일(현지시간)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 비핵화 방식 등을 둘러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양보를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깔린 행보라는 것이다. 미국이 회담에서 강경 태도를 고수하면 북한은 풍계리 행사는 물론이고 미·북 정상회담 자체를 취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풍계리공동취재단/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