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매물 쌓이는 강남 재건축

가격 주도권, 집주인→매수자로 넘어가

압구정 현대 1·2차단지
2억 싸게 내놔도 안 팔려
은마, 두 달 새 1억 이상↓
인근 단지도 덩달아 급락

관리처분인가 앞둔 단지들
매수문의 자체 아예 끊겨

이사·입주 몰린 하반기가
집값 향방 바로미터 될 듯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인근의 한 중개업소에 ‘급매물’을 소개하는 매물장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양길성 기자

21일 오후 2시 서울 강남 대치동 은마종합상가. 이곳에 터를 잡고 있는 27개 중개업소는 대낮에도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심지어 두 곳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올초만 해도 매수자 발길이 분주하게 이어지던 곳이다. 일부 중개업소엔 ‘급매물’이라고 써붙인 매물장이 붙어 있었다. 대치동 S공인 관계자는 “급매라고 해야 그나마 매수 문의가 온다”며 한숨지었다.

◆초기 재건축·신축 모두 하락

일선 중개업소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이어진 서울 인기 주거지역 집값 하락은 잠실에서 시작됐다. 전셋값이 최고 3억원 안팎 급락하자 매매시세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잠실동 ‘엘스’ 전용면적 84㎡ 매물(중간층 기준)은 지난 2~3월 17억원을 호가했지만 현재 15억원에 매물로 나와 있다.

인근 L공인 관계자는 “강남구 재건축 아파트 시세가 뛰면 덩달아 오르곤 했는데 전셋값이 급락하고 선도지역 힘이 약해지자 무서울 정도로 가격이 내리고 있다”며 “급매물 가격이 향후 시세로 자리잡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똘똘한 한 채 열풍이 분 작년 하반기부터 서울 집값 상승을 선도했던 강남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매매가격도 비슷한 시기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강이 보이는 압구정동 현대 1·2차 전용면적 198㎡ 로열층 매물은 45억~46억원을 호가했으나 지난달 말 42억9000만원에 거래됐다.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고 확신한 매도자들이 계약을 파기하고 위약금으로 수억원을 물어주던 게 지난 2월의 일이었다.

신만호 중앙공인 대표는 “고점 대비 2억~3억원씩 내린 급매물이 하나둘 나온다”며 “매수자들은 이보다 10% 더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와 초과이익환수제의 직격탄을 맞은 초기 재건축 대상 단지들도 바로 하락 대열에 동참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최근 두 달 새 1억5000만~2억원가량 떨어졌다. 전용 76㎡는 연초 16억5000만원까지 올랐으나 지금은 14억5000만~15억원에 매물로 나와 있다. 대치동 A공인 관계자는 “외국에 거주하는 소유주들이 걱정하는 전화만 걸어올 뿐 매수 의향을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잠실주공5단지 전용 76㎡ 급매물은 이달 초 17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2~3월엔 18억원 후반대에서 19억원을 호가했지만 현재 17억8000만~18억5000만원에 매물이 나와 있다. 2월에는 급매물은커녕 물건 자체가 귀했지만 지금은 매물이 차츰 쌓이고 있다.

곽창석 도시와공간 대표는 “신축 아파트는 입주 쇼크로, 재건축 대상 아파트는 초과이익환수제 등 규제 충격으로 약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리처분인가 앞둔 단지 불안
재건축 막바지 단계인 단지들도 위기감에 휩싸였다. ‘반포현대’가 가구당 1억3569만원의 재건축 부담금을 통보받자 다음달 시공사 선정을 앞둔 반포1단지 3주구 조합은 직격탄을 맞았다.

인근 D공인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1억5000만원 선까지 부담금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국토교통부 예상액처럼 4억원 이상 나오면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합 관계자는 “부담금이 너무 많으면 재건축을 연기하자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관리처분 인가를 앞둔 단지에도 불안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부담금을 피하기 위해 지난해 말까지 서둘러 관리처분 인가를 신청했지만 아직 최종 승인을 받지 못해서다. 반포동 신반포3차·경남아파트 인근 K공인 관계자는 “매수 문의는 거의 없다”며 “주민들이 매매 가격보다 오는 7월 관리처분 인가가 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연말 관리처분 인가를 앞둔 잠원동 한신4지구 인근 H공인 대표는 “아직은 급매물이 없지만 집주인들이 더 불안해한다면 상황이 달라질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하반기가 분수령

부동산 전문가들은 세금 대출 재건축 등 전방위적인 정부 규제와 입주물량 급증이 집값 하락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약세 분위기가 여름 비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분수령은 가을 성수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7월 발표 예정인 보유세 개편 방안이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보유세가 많이 오르면 ‘팔자’로 선회하는 다주택자가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4월 양도소득세 중과 시행 이후 다주택자 매물은 줄었지만 1주택자와 일시적 2주택자 매물은 꾸준히 나오는 상황에서 팔자 매물이 더욱 늘어나면 ‘매수자 우위 시장’으로 갈 것이라는 설명이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산업기반 붕괴로 지방 부동산시장은 붕괴위기로 치닫고 있다”며 “강남 재건축 시장까지 완벽하게 매수자 우위 시장으로 간다면 경기 연착륙을 위해 정부 정책도 유연하게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란/김형규/양길성 기자 why@hankyung.com
디지털경제 시대에 사람과 기업, 거버넌스가 즐겁게 어우러지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세상 곳곳의 목소리를 듣겠습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