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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재활용' 바람

계동 중앙탕

서울 계동의 ‘중앙탕’은 지은 지 50년 넘은 목욕탕이다. 1969년 개장 후 명맥을 이어오다 2014년 11월 대형 사우나와 스포츠 시설 등에 밀려 폐업했다. 하지만 지금은 지역주민과 여행객들로 매일 붐비는 안경점으로 바뀌었다. 안경 브랜드 젠틀몬스터가 이곳에 네 번째 매장인 ‘젠틀몬스터 북촌 플래그십 스토어’를 내면서다.

공간의 주제는 ‘남겨진 것과 새로운 것들의 공존’. 옛 목욕탕 간판을 그대로 달고 있는 이 건물은 안에 들어가면 최신 트렌드의 안경으로 가득하다. 내부 공간은 낡은 목욕탕 타일, 한때 수많은 사람이 몸을 씻었을 탕의 구조까지 그대로 품고 있어 새것과 낡은 것의 조화가 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

오래된 공장과 창고, 목욕탕을 개조해 문화공간이나 상업공간으로 바꾸는 ‘공간 업사이클링’이 확산하고 있다. 깨끗하고 잘 정돈된 현대적 디자인의 건물과 시설이 많은 도심에서 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낡은 공간에 더 매력을 느낀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태환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공간 업사이클링은 1990년대 쓸모를 다해 버려진 건축물의 새로운 활용 방안을 찾기 시작한 유럽에서 출발해 세계로 확산됐다”며 “성공적인 재생건축을 위해서는 디자인과 스토리텔링, 콘텐츠가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공간 업사이클링은 20년간 버려진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한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 탄광지역이 문화레저 시설로 바뀐 독일 졸페라인, 고가 철도가 공원이 된 뉴욕 하이라인 등이 등장하며 확산됐다. 국내에서도 선유도공원(2002년), 문화역 서울 284(2011년), 문화비축기지와 서울로 7017(2017년) 등이 공간 업사이클링으로 재생된 공공시설로 자리잡았다.

3~4년 사이 상업시설로도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서울 성수동 대림창고는 정미소와 창고였던 공간이 카페로 변신한 사례다. 앤트러사이트 합정점은 신발공장에서 카페로, 제주점은 전분공장이 카페로 변신한 곳이다.

중앙탕처럼 목욕탕이 문화예술 공간으로 업사이클링되는 일도 많아졌다. 전북 근대역사박물관 인근의 48년 된 영화목욕탕은 2015년 ‘이당미술관’이 됐다. 한 해 3만여 명이 찾는 명소다. 부산 감천마을 건강탕도 2012년 8월 카페와 갤러리로 바뀌었다. 서울 아현동의 60년 된 목욕탕인 ‘행화탕’은 한동안 버려졌다가 카페 겸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행화는 살구꽃을 의미하는 한자어로 과거 이 지역에 살구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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