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TV조선 ‘대군-사랑을 그리다’에서 끝단이를 연기한 배우 문지인.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TV조선 ‘대군-사랑을 그리다’에서 끝단이를 연기한 배우 문지인.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배우 문지인은 자신의 인생을 ‘예측불허’라고 표현했다. 지치는 시기가 올 때마다 극적인 반전이 뒤따른다는 이유에서다. 2016년 인기리에 방영된 SBS ‘닥터스’에 출연한 이후 그는 데뷔 후 가장 긴 공백기를 가졌다. ‘닥터스’의 다른 모든 배우들이 일을 할 때 그는 1년 가까이 쉬었다. ‘드라마는 잘 되는데 난 왜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두 작품에서 동시에 러브콜이 왔다. MBC ‘투깝스’와 TV조선 ‘대군-사랑을 그리다’였다. 문지인은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이라며 “재밌다”고 했다.

문지인은 ‘시청률 요정’이다. ‘비밀’ ‘용팔이’ ‘닥터스’ 등 그가 나온 작품은 대부분 좋은 시청률을 냈다. 지난 6일 종영한 ‘대군-사랑을 그리다’는 TV조선 자체 최고 시청률인 5.6%(닐슨코리아, 전국유료방송 기준)로 종영했다. 문지인은 “잘 된 작품들은 대본을 보면 느낌이 딱 온다”며 웃었다.

“화면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대본이 있어요. 많은 생각이 들기보다는 만화책처럼 술술 읽히죠. ‘대군’도 마찬가지였어요. 사극인데도 위트 있고 세련됐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김정민 감독님이 워낙 사극 쪽에서는 정평이 나신 분이기도 하고요. 아마 배우들 모두 잘 될 거라고 느꼈을 거예요.”

문지인은 예측할 수 없는 자신의 인생이 재밌다고 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문지인은 예측할 수 없는 자신의 인생이 재밌다고 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문지인은 성자현(진세연)의 몸종 끝단이를 연기했다. 신분은 낮지만 태도는 당당하다. 성자현과는 주종관계보다는 친구 사이에 가깝다. 성자현의 오빠인 성득식(한재석)의 구애도 차버린다. 문지인은 “다양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며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멜로도 있었고 가족, 우정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인간적이었다”고 말했다.

끝단이는 흥도 많다. 문지인도 흥이 많다. 연기할 땐 흥이 최고조에 달한다. 촬영장에만 가면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다. “각성 상태 같다고 할까요. 촬영할 땐 아픈 것도 몰라요.” 주변 사람들은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 문지인의 눈빛도 같이 돈다고 입을 모은다. ‘컷’ 소리가 나면 그전까지 자신이 어떻게 연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문지인은 “한 번 연기에 맛을 들이면 빠져나올 수 없다”며 “연기할 때 분출되는 에너지가 나를 치유해준다”고 했다.

연예계에 입문한지 벌써 9년이 지났지만 연기할 때 느껴지는 팽팽함은 한결같다. 그럴 때마다 문지인은 자신에겐 연기밖에 없다는 걸 절감한다. 완벽주의적인 기질도 더욱 심해진다. 때론 강해지기도 하고 때론 여려지기도 한다. 어디까지가 자신의 가능성이며 무엇이 부족한지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발전시켜야하기 때문이다.

“제가 워낙 욕심이 많아요. 남들이 10만큼 부담을 느낀다면 저는 15가 되는 거죠. 그래서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는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내가 좀 더 대범했다면 또 다른 길이 열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문지인은 연기가 천직이라고 믿는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문지인은 연기가 천직이라고 믿는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문지인은 인터뷰 때마다 슬럼프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대답은 언제나 쉽지 않다. 매일이 슬럼프일 수도 있고 슬럼프가 전혀 없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다. 원하는 속도로 성장할 수 없다는 걸 느낄 때마다 자신감은 떨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를 멈추진 않는다. 연기가 천직이라는 믿음에는 의심이 없다.

“어렸을 땐 좀 더 쉬웠어요. ‘에이 몰라. 죽기야 하겠어?’라거나 ‘망하기밖에 더하겠어? 망했다가 다시 하면 되지’ 하며 고민을 툭 던져버렸죠. 밥만 잘 먹더라고 하잖아요. ‘내가 밥 먹고 싶으면 일 하겠지’라는 생각? 하하하. 나이가 들수록 이렇게 고민을 끊어내는 게 힘들죠. 예전엔 한 시간이면 끝날 고민을 지금은 다섯 시간 넘게 하고 있어요.”

이런 문지인도 학창시절엔 자신이 배우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감독이 되기 위해 서울예대에서 연출을 전공한 그는 우연히 발을 들인 연기에 푹 빠졌다. 2009년 SBS 공채시험에 합격하며 진짜 배우가 됐다. 2년 동안 SBS에서 방송하는 거의 모든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그는 기본기를 다졌다. 계약 기간이 끝나고 마주한 세상은 그에게 혹독했다. 수도 없이 오디션을 봤고 수도 없이 떨어졌다. 문지인은 “돌아보면 어느 것 하나 쉽게 얻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20대는 유독 길었다.

“다이내믹한 일이 많아서 20대가 길게 느껴진다”는 문지인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다이내믹한 일이 많아서 20대가 길게 느껴진다”는 문지인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그래서 문지인은 감사함을 잃지 않는다. “어렵게 들어간 작품이 잘 되면 보상 받는 기분이 들어요.” 원하던 배역을 놓쳐도 ‘다른 대박 작품이 오려나보다’며 마음을 굳게 먹을 수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것을 지난 10년 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제 문지인은 자랑스러운 배우, 자랑스러운 딸, 자랑스러운 친구가 되고 싶다. 후배들에게도 좋은 선배가 되길 원한다. 자신이 겪었던 고민을 바탕으로 후배들에게 필요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선배가 되려고 한다.

“정말 신기한 게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든 문집에 제가 ‘연예인들은 정말 행복할까?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는 내용의 글을 썼더라고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말을 그 때의 제가 똑~같이 적어놨더라고요. 하하하. 제가 언제 가장 행복하냐고요? 배우로서는, 제가 출연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그로 인해 많은 인연이 생길 때. 그리고 인간 문지인으로서는 제가 하고 싶었던 일로 저와 제 가족들을 챙길 수 있다는 게 가장 행복하죠. 그만한 대가도 따르지만 그걸 극복할 수 있는 능력도 생기는 것 같아요. 연기를 할 때 저는 제일 기쁘고 행복하니까요.”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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