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반기, 내년말부터 분기마다 순거래 내역만 공개

외환시장 불안정성 커질 듯
범위는 최대한 줄였지만 과거보다 개입 약화 불가피
수출기업들에 부담될 수도

외환당국 정책 노출 우려
개입패턴 읽힐 가능성 높아 투기세력 공격땐 시장 혼란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내역이 내년 3월 말 처음 공개된다. 정부는 공개 주기를 반기(6개월)에서 분기(3개월)로 단계적으로 줄이고 공개 시점은 3개월의 시차를 두기로 했다. 외환당국이 미국 달러화를 어느 시점에 사고팔았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총매수액에서 총매도액을 차감한 순거래 내역만 공개한다.

매달 구체적인 매수·매도 내역을 공개하라는 미국의 압력은 막아냈다는 점에서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순거래액만 공개

정부는 17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외환정책 투명성 강화 방안을 확정했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내년 3월 말 공개하고, 내년 상반기 개입 내역은 내년 9월 말 공개한다.

내년 3분기부터는 분기별 공개로 바뀐다. 공개 시점은 반기별 공개 때와 같은 3개월 뒤이며 한국은행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다.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가 이슈로 떠오른 시점은 지난 3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때였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미 FTA 개정협상 조기 타결을 위해 환율 주권을 넘겨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하지만 미국의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공개는 기정사실이 됐고 관심은 공개 수위였다.
미 재무부는 우리 외환당국에 구체적인 매수·매도 내역을 매달 공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외환당국의 매수·매도 내역이 공개되면 한국 외환시장이 환투기 세력에 노출될 수 있다며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총리는 지난달 19~21일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각각 만나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 범위를 조율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김 부총리가 협의를 끝내며 시장 개입 공개 범위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정하고 발표 시점도 자율적으로 결정한다고 미국 측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순거래액 공개는 외환당국이 이달 초 50억달러를 사들이고 이달 말 50억달러를 팔았다면 매수액을 제로(0)로 표기하는 방식이다.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패턴을 파악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적극적 환율 대응 어려워져”

시장에서는 정부가 미국의 압력에도 시장 개입 공개 범위를 최대한 줄였다는 점에서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정부가 적극적인 환율 정책을 펴기 힘들어진 측면은 부인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원화가치 절상 압력이 지속될 때 외환당국의 개입 강도가 과거에 비해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단기간 절상 속도가 빨라지면 수출 기업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순액 공개만으로도 외환당국의 환율 정책 방향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공개 기간 사고판 금액이 순매수나 순매도로 나오면 그 자체로 외환당국이 환율을 올리거나 내리려는 의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6개월마다 순매수 내역을 공개하는 건 큰 부담이 없지만 내년 이후 3개월 단위로 공개하게 될 때 일정 시간이 지나면 투기 세력에 외환당국의 개입 패턴을 읽힐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설명했다.

반면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평가도 있다. 박상현 리딩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환율 협의 이슈가 불거지면서 이미 원화가치에 상당 부분 반영됐기 때문에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는 게 앞으로도 외환시장에 특별한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태훈/김은정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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