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별곡 시즌2 [이드 소프트웨어 1편 - 존 카멕]

■ 게임 엔진의 아버지

게임업계에는 천재중의 천재라 불리는 전설적인 인물들이 있다. 그 중에 한 명이 바로 존 카멕이라는 게임 개발자다. 존 카멕은 자신이 개발한 게임들인 '울펜슈타인 3D', '둠', '퀘이크'의 프로그램 소스를 세상에 무료로 공개하고, 게임엔진인 퀘이크 엔진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전편에서 소개한 에픽메가게임즈의 언리얼 엔진 전에 현재와 같은 게임엔진의 시초를 꼽는다면 단연 퀘이크 엔진이다.

[울펜슈타인 3D]
(이미지 – YouTube.com)

1991년 설립된 이드 소프트웨어(id Software)는 사실상 두 명의 '존'에 의해 설립되고 그 이후로도 두 명의 '존'이 이끌어 가는 회사였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존 카멕이고 다른 한 명은 존 로메로다. 두 사람 모두 일반적인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기행적인 부분들이 많았다. 존 카멕의 경우 사제 폭탄으로 인해 소년원 수감생활을 했을 만큼 남다른 행보의 인물이다. 소년 시절에는 인재보다는 문제아에 가까운 골치덩어리였지만 결국엔 그의 천재성을 게임산업에 발휘하면서 세상을 들썩이게 만든 여러 가지 게임을 개발했다.

[둠(DOOM)]
(이미지 – YouTube.com)

두 사람은 회사를 설립하자마자 '울펜슈타인 3D (1992)'라는 게임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더니 바로 다음해 다시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한 게임을 내놓았다.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명작 '둠(1993)'이 바로 그것이다.

'둠'이라는 게임이 세상에 미친 영향은 단순히 글만으로 전달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 시대를 직접 겪어 보지 않았으면 쉽게 와 닿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본 고장 미국에서는 전 지역의 직장인들이 업무 시간에 몰래 '둠'을 하느라 회사 입장에서 강제로 게임을 못하게 하는 방법들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정도로 그 여파가 대단했다.

한국에서도 '둠'은 게이머들에게 3D FPS라는 생소한 장르에 눈을 뜨게 만든 게임이었다. 전작 '울펜슈타인 3D'나 다른 비슷한 게임들과는 달리 제대로 된 3D 게임으로, 많은 게이머들에게 멀미현상을 일으키게 만든 게임이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필자도 3~4시간 정도 책상에 앉아 '둠'을 하다 일어서면 방 바닥이 울렁거릴 정도로 멀미현상을 겪었던 적이 있다

[둠(DOOM)]
(이미지 – YouTube.com)

오랜 시간 게임 화면을 보고 있다가 현실에 눈을 돌리면 2차원 평면에서 구현 되는 3차원적인 공간의 불규칙한 움직임에 대한 신체반응이 내이(內耳)의 반고리관의 림프액에 전달되어 그 비정상적인 진동이 뇌의 구토 중추에 전해져 일어나는 멀미 현상을 겪게 된다. 실제로 필자는 밤새 '둠' 을 하다가 방 바닥에 드러누워 한 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어지러움에 구토 증상을 겪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멀미 현상을 겪은 것은 필자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마찬가지였다.

'둠'이 세상에 등장한 이후에 나온 게임들인 '퀘이크'나 '하프라이프' 등의 게임을 'DOOM Type(둠 같은 게임)'으로 불렀다. . '둠'이 출시된 이후 FPS라는 단어가 정립되기 전까지는 이런 장르의 게임들은 모두 '둠 같은 게임'이라 불렸다. 이처럼 '둠'은 아직 세상에 FPS라는 단어 조차 없었던 시절에 등장하여 게임 역사에 있어 가장 커다란 영향을 준 게임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게임이다

[둠2 (DOOM II)]
(이미지 – http://ru.doomrus.wikia.com/wiki/DooM_II:_Hell_on_Earth)

그 이후 '둠2'가 1994년 출시될 때까지 어떤 게임도 '둠'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퀘이크 (1996)'가 출시되기 전까지 그 어떤 게임도 '둠2'를 넘지 못했다. 이렇게 세상을 들썩이게 만든 게임을 만든 존 카멕은 불과 20대에 불과한 나이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 개발자 중에 한 사람으로 각종 상과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AIAS)가 시상하는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AIAS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게임업계 관계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존 카멕은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미야모토 시게루, 시드 마이어, 사카구치 히로노부에 이어 네 번째다. 앞서 세 명이 평생에 걸친 업적을 공로로 인정받았던 것에 비해 존 카멕은 당시 31세라는 최연소 기록으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그 최연소 기록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았다.

[퀘이크]
(이미지 – https://www.moregameslike.com/quake/)

사실 그가 만든 게임은 미야모토 시게루, 시드 마이어, 사카구치 히로노부에 비해서 많지는 않다. '커맨더 킨'을 시작으로 '호버탱크' 이후 '울펜슈타인 3D'과 '둠', '퀘이크'가 사실상 전부이다. 게임만으로 유명해지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유명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받고 존경 받는 이유는 바로 앞서 처음에 얘기한 것처럼 '게임엔진'이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시초로 꼽힐 만큼 그 분야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다음 편에서는 그가 만든 게임들과 게임엔진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한다.

■ 필자의 잡소리

기술적인 분야에서는 최고로 꼽히지만, 존 카멕이 아직 애송이였던 시절 존 로메로라는 짝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공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굳이 애플(Apple)社와 비교한다면 존 카멕은 스티브 워즈니악에 해당하고 존 로메로는 스티브 잡스와 같은 역할이었다.

사업적인 분야보다는 기술적인 분야에 천재적인 소질을 발휘했던 존 카멕도 그를 이끌어 주고 외부에 포장하고 알리는 역할을 해줄 누군가가 없었다면 단순히 실력 있는 기술자라는 타이틀로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록 평생을 같이 하지 못하고 게임 개발 도중 의견 차이로 서로 결별하게 되었지만, 그 둘의 행보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으며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정리=서동민 한경닷컴 게임톡 기자 dmseo80@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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