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논설위원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다. 아랍어로는 ‘신성한 곳’이란 뜻의 ‘알 쿠드스(Al Quds)’로 불린다. 북부 구시가에는 ‘통곡의 벽’만 남은 예루살렘성전,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희생제물로 바치려 했던 모리아 산, 예수가 못 박힌 골고다 언덕이 있다. 동시에 무함마드가 승천한 바위의 돔도 자리해 3대 종교의 성지 중의 성지다. 하지만 이름과는 반대로 평화로웠던 적이 거의 없고, 신성함보다는 속세의 계산이 더 절실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예루살렘이 또다시 유혈 사태로 얼룩졌다. 미국이 지난 14일 텔아비브의 주(駐)이스라엘 대사관을 이곳으로 옮긴 후폭풍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전역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져 사흘 새 60여 명이 사망하고 부상자는 2000명을 넘었다.

왜 비극이 되풀이될까. 거슬러 올라가면 꼬일 대로 꼬인 현대사의 실타래가 잡힌다. 이스라엘 건국과정에서 예루살렘은 별개 구역으로 유엔이 관리키로 했지만, 곧이은 1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동서로 분할해 통치했다.

그러다 1967년 요르단과의 물 분쟁, 이집트의 홍해 봉쇄로 고사 위기에 직면한 이스라엘이 전격 작전에 돌입했다. 이른바 ‘6일 전쟁(3차 중동전쟁)’으로 가자지구, 시나이반도, 골란고원, 요르단강 서안(웨스트뱅크)을 장악했다. 이스라엘은 졸지에 영토가 4배로 늘었다. 특히 전쟁 전 10% 미만이던 요르단강 수계 관할권을 강 전체로 확장했다. 이는 경제성장과 근대화의 토대가 됐다.(스티븐 솔로몬 《물의 세계사》)
이스라엘은 웨스트뱅크에 속한 동(東)예루살렘과 서예루살렘의 통합에 나섰다. 정부청사를 대거 이전하고 1980년 수도로 선포했다. 하지만 유엔은 동예루살렘을 점령지로 간주해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유대인 파워가 강한 미국 의회가 1995년 ‘예루살렘 대사관법’을 제정해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했다. 다만 안전을 이유로 역대 대통령들이 대사관 이전 연기 행정명령에 6개월마다 서명해왔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을 거부해 지금 사태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갈등은 여전히 짙은 안갯속이다. 미국 대사관이 옮겨간 지역이 동서 예루살렘의 경계선인 탈피옷이기 때문이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곳은 본래 미국 총영사관 자리로, 서예루살렘의 동쪽 맨 끝이자 동예루살렘과 맞닿아 있다”며 “미국이 예루살렘의 동서 분리나 통합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아 두고두고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이 독립 시 수도로 점찍어 둔 곳이지만, 국제법상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기사 발리앙과 살라딘의 대화가 떠오른다. “예루살렘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야, 모든 것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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