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돌파하는 과학기술 (3)·끝
상위 0.1%에 도전하는 한국 과학자들

장석복 기초과학硏 연구단장
메탄가스 새 활용 길 열어
3년 연속 논문 피인용 상위 1%

박남규 교수는 태양전지 연구 선도
해외 학술기관서 노벨상 후보 올려

"호기심에서 시작한 연구 주제도
좋은 결과 나오도록 지원해야"

메탄가스를 새로운 에너지원과 의약품 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장석복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단장(가운데)과 연구진. /IBS 제공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중세인이 가졌던 지구 중심의 사고 틀을 깨면서 근현대과학 탄생의 불씨를 지핀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53년 미국과 영국의 젊은 과학자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 구조가 이중나선 형태라는 사실을 밝힌 한 편의 논문은 분자생물학을 탄생시키며 생명과학의 발전을 이끈 원동력이 됐다. 둘 사이 공통점은 기존의 틀을 부수고 과학의 지형을 바꾼 연구라는 것이다.

◆화학공업·신재생에너지 근간 흔든다

한국에서도 과학의 지형을 바꿀 만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장석복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장(KAIST 교수)은 자연에 풍부한 탄소와 수소로 석유가 필요 없는 시대, 골칫덩어리인 온실가스에서 화학원료를 얻는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화학공업의 근간이 되는 탄화수소는 석유와 천연가스에 풍부하지만 지금까지 인류는 이를 만들지는 못하고 소모만 해왔다. 화학계는 수십 년간 탄화수소를 분해했다가 다시 만드는 연구에 도전장을 냈지만 좀처럼 성공하지 못했다.

자연에서 얻은 탄화수소를 분해하고 이를 반대로 합성하는 데는 단계가 복잡하고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장 단장은 화학반응 단계를 획기적으로 줄여주고 에너지를 덜 쓰게 하는 촉매에서 가능성을 찾았다. 장 단장은 이리듐 촉매를 써서 지구온난화 주범이자 화학공업에서 처치 곤란이던 메탄가스를 분해하고 다시 합성하는 방법을 처음 제시했다. 메탄가스를 새로운 에너지원과 화학 소재, 의약품 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그의 논문은 해외 학계가 주목하는 베스트셀러다. 장 단장은 2015년 이후 3년 연속 다른 과학자가 많이 인용하는 논문 상위 1% 연구자로 선정됐다. 그가 이 분야 연구를 주도하게 된 것은 남들보다 먼저 촉매반응을 연구 주제로 선점한 덕분이다. 난제를 풀기 위해 논문 수만을 고집하지 않고 도전적인 학생들을 연구원으로 골라 뽑은 것도 힘이 됐다.

장 단장은 “한 분야를 개척하는 연구를 하려면 남들보다 먼저 주제를 선점하고 좋은 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어려운 도전 분야일수록 연구 책임자가 연구원들을 논문에서 자유로워지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는 에너지 혁명을 주도할 세계 최고 효율의 태양전지 연구를 이끌고 있다. 세계적 학술정보 기관인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옛 톰슨로이터)는 지난해 태양광 시대를 앞당길 페로브스카이트 전지 연구를 주도하는 박 교수를 노벨상 주요 후보군에 올렸다. 노벨 과학상 후보에 한국 과학자가 오른 것은 유룡 KAIST 화학과 명예교수 이후 두 번째다.

박 교수는 효율이 좋고 값싼 태양전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20년간 한우물만 팠다.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재생에너지연구소(NREA),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거쳐 성균관대로 자리를 옮겨 태양전지 연구를 이어갔다.

일본 과학자가 처음 제시한 페로브스카이트 전지는 가볍고 제작비가 저렴해 웨어러블 전자기기나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에 활용될 차세대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효율이 떨어지는 단점 때문에 한동안 과학계에서 외면받았다.
박 교수가 2011년 페로브스카이트 전지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논문으로 내놨지만 그해 논문은 한 편도 인용되지 않았다. 이후 뒤늦게 그의 연구 결과가 주목받으면서 2012년 세계적으로 2000편이 넘는 관련 논문이 쏟아졌다.

박 교수는 “연구를 선점할 수 있었던 것은 20년 이상 한 분야만 연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율 연구 보장하는 지원사업 필요

한국연구재단이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논문 인용 횟수에서 세계 1%에 포함된 한국 과학자는 모두 41명에 이른다. 이 중 4년 내내 상위 1%에 오른 과학자는 현택환 서울대 교수와 권익찬 KIST 책임연구원, 강신민·조열제 경상대 교수, 윤주영 이화여대 교수, 박광식 동덕여대 교수 등 9명이다.

과학계에서는 영향력 있는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가 더 많이 나오려면 다양한 형태의 연구방식에 대한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남규 교수는 “글로벌 프런티어 사업과 같은 큰 규모의 집단연구든 개인 연구자의 창의적 연구든 과학자의 호기심에서 시작한 주제가 좋은 연구 결과로 이어지도록 차분히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존 틀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면 아이디어가 많은 젊은 연구자에게 일정 예산을 주고 자율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지원사업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IBS는 1986~2006년 노벨상 수상자 137명 중 66명(48%)이 30대에 개척한 연구 결과를 인정받아 수상했다고 분석했다.

김태정 한양대 물리학과 교수는 “최근 입자물리학에서도 인공지능(AI) 기술인 딥러닝(심화학습)을 이용해 기존 과학자들이 미처 포착하지 못한 현상을 규명하는 연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새롭게 떠오르는 연구 주제를 발굴하려면 젊은 연구자들에게 소액이라도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지원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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