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이번엔 '포괄임금제 폭탄'

고용부, 내달 '포괄임금 가이드라인' 발표

출퇴근·휴게시간 명확 땐 노사합의해도 금지
근로시간 산정 어려우면 團協 등에 명시해야

미지급 초과수당 환급 안하면 경영진 처벌
포괄임금제는 일반 기업의 사무직과 연구개발직 등 근무 시간을 측정하기 어렵거나 굳이 따질 필요가 없는 업무 영역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는 임금 체계다. 근로기준법 등 현행 법령엔 근거 규정이 없지만 그동안 법원 판례로 도입되면서 근로감독을 받지 않는 ‘회색 지대’로 남아 있었다. 정부가 포괄임금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기로 함에 따라 초과근로수당을 산정하는 기준과 범위를 놓고 큰 혼란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기업 절반 포괄임금제 도입

정부가 포괄임금제를 손보겠다고 나선 이유는 일부 기업이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연장 및 휴일근로 등 초과근로시간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사전에 약정한 대로 급여에 포함시켜 수당을 일괄 지급하다 보니 장기 근로가 일상화되고 있다는 게 정부 측 인식이다. 또 일부 기업이 근로시간을 측정하기가 어렵지 않은데도 초과근로수당을 제대로 주지 않기 위해 포괄임금제를 도입하고 있다는 의구심도 갖고 있다.

기업들은 현장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정부가 불필요한 규제에 나선다는 반응이다. ‘근로시간=생산성’ 등식이 맞지 않는 사무직과 연구개발직 등에 획일적인 잣대를 적용하면 기업 경쟁력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내놨다.

포괄임금제는 연장·야간·휴일근로 등 초과근로에 대한 법정 수당을 미리 정한 뒤 한번에 지급하는 제도다. 초과근로수당을 실제 근무시간과 관계없이 ‘기본급의 25%’ 또는 ‘매달 20만원’ 등으로 미리 정해 놓는 방식이다. 기업들은 근로시간을 꼼꼼하게 관리할 필요가 없거나 물리적으로 따지기 어려운 업무 등을 중심으로 포괄임금제를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한 ‘기업 노동비용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11만6000개 기업 중 약 6만1000곳(52.8%)이 포괄임금제를 도입한 것으로 추정됐다. 기업 두 곳 중 한 곳꼴이다. 이들 기업은 대부분 연장근로수당을 포괄임금제에 포함하고 있으며 휴일근로 및 야간근로수당 등을 포함하는 기업도 다수인 것으로 조사됐다.

3년치 미지급 초과수당 돌려줘야
정부는 포괄임금제를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업무에 한해 예외적으로 인정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부가 다음달 발표할 ‘포괄임금제 사업장 지도지침’에서 이 같은 원칙을 포함시킬 것으로 전해졌다. 고용부는 지침에 ‘출퇴근과 휴게 시간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일반 사무직은 포괄임금제 적용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을 명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다고 인정되더라도 노사 단체협약과 근로계약서 등에 포괄임금제와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이런 지침 내용들은 그동안 법원 판례를 통해 정해진 것이라고 고용부 측은 설명했다.

기업들은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동안 세세하게 따져보지 않았던 일반직과 연구개발직 등의 초과근로수당에 대한 기준과 범위를 노사 합의로 새로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노사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뒤 최종 기준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 의견 수렴은 지난 1월 한 차례 회의를 여는 데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측이 구체적인 초안을 알려주지 않아 형식적인 회의였다는 게 당시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소송 부추기나 전전긍긍

정부는 그동안 포괄임금제를 잘못 적용해온 기업에 대해선 실근로시간을 따져 미지급된 법정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원칙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금채권 소멸시효(3년)를 고려하면 3년치 밀린 초과근로수당을 줘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근로시간 규정 위반 또는 임금체불 등으로 회사 경영진이 처벌을 받게 된다.

재계는 정부 방침이 노사 분쟁과 소송을 부추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 지식융합학부 교수는 “연장근로가 많은 정보기술(IT)업계와 연구소의 사무직, 연구개발직 등은 소송을 제기하면 월급을 더 받게 된다”며 “노사 분쟁과 소송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포괄임금제나 탄력적 근무제와 같은 유연한 임금체계를 도입하기 위해 법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10시간 궁리해서 1시간 동안 일하는 경우도 있고 그야말로 놀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다”며 “새로운 시대에 맞는 입법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좌동욱/김주완/심은지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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