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당성 평가나 재원조달 계획 없는 공약
지자체장 권한 넘는 국책사업 유치 약속
空言으로 민심 우롱하는 후보 가려내야

강철희 <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한국건축가협회 회장 >

정책을 자문한다며 연락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난다 싶더니 역시나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와서였다. 정치라면 뉴스에도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산 지 오래지만 때마다 부랴부랴 공약 만들기에 도움을 청하는 정치 지망생과 캠프 참모들 덕에 이 동네 저 마을 사정을 듣곤 한다.

이번 지방선거의 가장 큰 화두는 역시 ‘도시재생’인 듯하다. 중앙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뉴딜사업 신청 기간이 선거 후인 7월 초로 잡혀 있어서인지 너나 할 것 없이 도시재생 공약 하나쯤은 내세우는 모양이다. 각 지역의 정치 리더들이 도시정책에 이렇게나 관심을 갖고 있었나 싶어 반갑고 고맙게 생각하려다가도 우리 지방자치의 고질적인 병폐라 할 수 있는 사회간접자본(SOC), 개발 공약 남발이 이름만 바뀌어 계속되는 속내를 보고는 마음을 돌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물론 온갖 개발 공약이 쏟아져 나오는 것 역시 여전하다.

선거를 앞두고 한 표 한 표에 피가 마르는 정치인이야 못할 말이 있으랴. 결국 허황된 약속으로 민심을 우롱하는 후보를 일찌감치 가려내는 것은 우리 유권자의 몫일 수밖에 없다. 귀를 솔깃하게 하는 공약일수록 더 날카롭게 질문하고 한 번 더 의심해봐야 할 것이다. 도시개발정책 공약만큼은 국민 모두가 똘똘 뭉쳐 옥석을 가려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건축가의 지방선거 공약 읽는 법’을 공유한다.
첫째, 타당성 평가 없는 공약은 일단 거른다. 하다못해 꼬마빌딩 하나를 지어도 계산기를 두드리고 또 두드려 보는 것이 정상인데, 수백억원에서 수조원에 달하는 개발 사업이 지역 자존심이나 지역 간 분배 논리로 추진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두 번의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주요 후보가 앞다퉈 공약으로 내놨다가 두 번 모두 무산된 동남권 신공항이 대표적인 예다.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고 대국민 사과까지 하며 백지화한 사업이 불과 수년 만에 다시 고개를 든 데는 후보 지역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무모한 경쟁 탓이 컸다. 영남이 밀양과 가덕도 편으로 나뉘어 그야말로 지리멸렬하게 싸워댔지만 그 어느 쪽에 공항이 들어서도 충분한 비용 대비 편익을 내지 못할 것이라는 기본적인 팩트에는 변함이 없었다.

둘째, 타당성이 있어도 돈이 없으면 또 거른다. 돈 쓸 약속을 하는데 돈 마련할 계획이 없다면 좋게 말해 허풍이고 엄밀하게는 사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확실한 재원 조달 계획이 없는 공약이 수두룩한 것이 우리의 지방 정치 현실이다. ‘국비 지원’이나 ‘민자 유치’를 너무 쉽게 외치지만 어디까지나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에 불과할 뿐이다. 2017년 기준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가 국토 및 지역 개발에 쓸 수 있는 돈은 전체 예산의 6.8%에 불과하다. 게다가 전국 지자체 243곳 중 215곳, 그러니까 90%에 가까운 지자체의 재정 자립도가 50% 미만이라는 사실은 그만큼 지자체장이 자율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사업의 폭과 규모 또한 제한돼 있음을 말해준다.

셋째, 해당 지자체장의 권한 범위를 넘어서는 사업은 결코 공약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철도나 공항처럼 규모가 큰 사업일수록 결정권과 예산권 모두 중앙정부 손안에 있게 마련이다. “우리 지역으로 가져오기 위해 열심히 뛰어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과 “내가 당선되면 우리 지역으로 가져올 것”이라는 공언(空言)은 확실히 구분해야 할 것이다. 특히 대통령과의 친분을 암시하며 국책사업 유치를 장담하는 일은 지역 유권자를 기만하는 행태임은 물론 중앙정부에 부담을 끼쳐 국가 대사를 그르치는 망동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직도 SOC 유치를 ‘선거판 필살기’로 여기는 후보, 도시재생을 만병통치약이나 마법의 주문처럼 외치는 후보가 바로 우리 동네에 있지는 않은가. 제발, 이번만큼은 달콤한 유혹에 속아 말도 안 되는 거짓 공약에 소중한 한 표를 던지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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