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교 55년 한국을 친구로 보는 유럽시민
그 공공외교적 자산을 대체할 것은 없다

김흥종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얄타회담을 기억하는 프랑스 할머니를 만난 것은 며칠 전이었다. 찻집의 옆자리에 앉은 나이 80의 백발 할머니는 스웨터를 뜨고 있었다. 젊은 시절 평범한 미술 디자이너로 생계를 꾸리고, 찬란히 빛나던 1960년대 샤를 드골 대통령을 최고의 정치인으로 생각하고, 자크 시라크와 에마뉘엘 마크롱을 좋아하는 할머니는 최근 한반도에 나타난 정세 변화를 크게 축복하고 높이 평가했다.

그 세대는 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 그리고 알제리 전쟁을 몸으로 생생하게 기억하는 세대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 된다”, “평화의 가치는 아무리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인상적인 것은 잿더미에서 시작해 이젠 유럽과 진정한 동반자가 된 대한민국에서 또 다른 불행은 없어야 한다는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의 젊은 시절, 세네갈과 가나보다 더 가난했던 한국을 글로벌 동반자라고 말했다.

할머니뿐만 아니었다. 유럽 여러 나라에 집을 갖고 있다는 파리의 부동산 소유자, 브르타뉴의 펜션 주인 등 오다가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 여럿에게 축하를 받아 쑥스럽기도 했다. 한 은퇴한 보험회사 간부는 한반도를 얘기하며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지향한 유럽 통합의 이상을 얘기했다. 그래서 나는 그분께 유럽연합(EU)과 한국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63년 수교 이후 유럽연합이 보여준 한반도 문제에 관한 관심, 평화를 지향하는 일관된 입장, 민주주의와 인권에 관한 흔들림 없는 가치 외교를 얘기했다. 그리고 그 관계가 55년 동안 이어지고 있으며 이제는 양자 간 관계가 정치, 경제 그리고 안보로 확대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종일관 눈을 반짝이던 그는 무척 행복해했다.
돌이켜 보면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과 유럽연합의 관계는 빈약했다. 한국은 유럽연합이 관계를 맺은 수많은 최빈국 중 하나에 불과했고,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시장접근 혜택을 베푸는 일방적 관계에 불과했다. 관계가 빈약한 것은 한국 때문만은 아니었다. 1967년에야 관세동맹을 완성한 유럽공동체는 회원국의 권한이 여전히 강했다. 한국 처지에서도 당시 영국, 프랑스, 독일과의 양자 관계가 더 중요했지 초국가적 기구인 유럽공동체와는 별로 할 것이 없었다.

이런 관계는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면서 크게 바뀌었다. 단일시장을 완성하고 마스트리흐트 조약을 발효한 유럽연합은 1990년대에 권한을 크게 강화했다. 한국의 눈부신 경제적 성공은 전 유럽 차원에서 대(對)한반도, 대한국 정책을 다시 정리할 필요성을 부각시켰고 이 역할을 맡은 것은 유럽연합이었다. 양자는 대표부를 공식 설치했으며, 1996년 기본협력협정 체결을 계기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공식화했다. 유럽연합 차원에서 한국에 대한 반(反)덤핑 등 제소가 집중된 것이 1990년대 말인데 이는 더 이상 한국을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호혜적 관계로 보겠다는 유럽의 변화된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제 양자 간에는 2010년 개정하고 2014년 발효한 기본협정, 2011년 잠정 발효하고 2015년 전면적으로 발효한 한·EU 자유무역협정(FTA), 그리고 위기관리협정이 체결돼 있다. 30개 이상의 정부 간 채널이 가동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간 교류, 과학기술 교류, 문화 교류 등 다양한 접촉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유럽시민은 지구촌 모든 문제를 같이 상의할 수 있는 친구로 우리를 대하고 있다. 이런 공공외교적 자산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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