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 소설 '페스트' 연극무대 올리는 연출가 박근형

국립극단 '세계고전 시리즈'
명동예술극장서 18일 개막

격리된 도시 '오랑'을
둘로 나뉜 한반도로 설정
자연스럽게 관객 몰입 유도
소시민 다룬 작품 이어갈 것

박근형 연출이 14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카뮈 원작소설로 만든 연극 ‘페스트’를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고립된 섬에서 수만 마리의 쥐가 떼로 죽는다. 사람들도 열병을 앓더니 순식간에 죽음을 맞는다.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페스트》 얘기다. 페스트(흑사병)로 처절하게 죽어가는 인간 군상은 페스트보다 더 거대한 공포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 비극 앞에서도 연민과 연대는 조용히 싹을 틔운다. 그 영향이었을까. 잔인하게 불어닥친 페스트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간다.

국내 대표 연출가 박근형이 카뮈의 《페스트》를 무대에 올린다. 국립극단의 ‘2018 세계고전 시리즈’ 중 한 공연으로 그가 각색과 연출을 모두 맡았다. 오는 18일부터 내달 10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관객을 맞는다. 박 연출은 14일 “페스트는 더 이상 발생하고 있지 않지만 초고속 문명 속엔 그에 못지않은 재난이 계속 발생한다”며 “페스트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원작의 경고처럼 절망과 희망은 반복되겠지만, 그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의 강한 의지를 붙잡고 싶었다”고 말했다.

◆“카뮈의 동시대성 고민 담아”

1985년 극단76에 입단하며 연극을 시작한 박 연출은 2003년 극단 골목길을 창단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로 후학도 양성하고 있다. 대표작은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개구리’ ‘잠 못드는 밤은 없다’ ‘청춘예찬’ 등이다.

묵직한 주제를 주로 다뤄온 ‘거장’이지만 인터뷰 내내 그는 소탈하고 따뜻한 모습이었다. 카뮈의 휴머니스트적인 면모와도 닮은 듯했다. 박 연출 역시 카뮈에 대해 강한 애착을 보였다. 그동안 카뮈의 《칼리굴라 1237호》 《레지스탕스》 등을 무대에 올렸다. “카뮈는 동시대의 문제와 끊임없이 마주하고 이를 극복해 나가려 했습니다. 저도 급변하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시대의 고민을 다루는 데 카뮈 작품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저는 감정이 메마른 편인데도 그의 작품을 보면 북받치는 슬픔과 따뜻함을 느낍니다.”
이번 무대에도 각색을 통해 동시대성에 대한 강렬한 고민을 담았다. 격리된 도시 ‘오랑’에 철조망을 둬 둘로 나뉜 한반도를 연상시키도록 했다. “우리에게 ‘고립’은 뭘까 생각해 봤더니 분단 상황이 떠오르더군요. ‘반도’라고 하면 삼 면은 바다, 한 면은 육지에 이어져 있는데 우리는 한쪽이 철조망으로 막혀 있으니 결국 섬과 같죠. 관객들도 이 땅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것 같습니다.”

2인1역 체제도 선보인다. 의사 리유(임준식 분)와 페스트 사태를 회상하는 내레이터로서의 리유(이찬우 분)를 나누는 것이다. “1년이란 시간 동안 상황이 급변하는데 배우 혼자가 하기엔 벅차다고 생각했어요. 또 페스트가 끝난 시점, 혹은 2018년의 지금 시점에서 이 상황을 바라보며 따로 내레이션하고 싶었어요.”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 응원

박 연출은 ‘개구리’로 인해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르며 고충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페스트’처럼 그는 절망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 “선배들이 과거에 더 많은 힘든 일을 겪었던 것과 비교하면 전 아무것도 아니죠. 물론 페스트처럼 시간이 지나면 이런 사태가 또 일어날지 몰라요. 그래도 이번처럼 후배 예술인들이 더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그랬듯 그는 평범한 소시민을 다룬 작품들을 이어갈 생각이다. “엄청난 사명을 갖고 연극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건 아니에요. 격랑에 휩싸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할 뿐입니다. 뿔뿔이 흩어지기보다 함께한다면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죠.”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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