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미국發 '긴축 발작' 우려
내달 미국 금리인상 조짐에
남미 이어 동유럽·동남아까지 확산
금리 올리고 달러 팔아도 역부족

'신흥국 위기' 엇갈린 시선
JP모간 "전보다 경제체력 탄탄
장기 약세장 시작 아니다"

S&P "고금리·强달러·유가상승에
신흥국 외채 부담도 커져"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국발(發) ‘긴축 발작(taper tantrum)’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지난 3월 기준금리를 연 1.5~1.75%로 0.25%포인트 올린 데 이어 다음달 추가 인상할 것으로 관측되면서 아르헨티나 터키 브라질 등 신흥국에서 외국인 자금이 대규모로 빠져나가 시장 충격이 커지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긴축 발작은 미국 금리가 상승할 것으로 우려하는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함으로써 신흥국의 통화 가치와 주가가 급락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사례로는 2013년 벤 버냉키 당시 Fed 의장이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하기로 하자 신흥국 주가와 통화 가치가 급락하는 긴축 발작이 나타났다.

시장 예상처럼 미국이 계속 기준금리를 올리면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에다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일부 신흥국은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험에 놓일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에서 시작된 시장 불안은 터키 러시아 폴란드 등 동유럽을 거쳐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로 번지는 모양새다.

신흥국 통화 가치 줄줄이 급락

대다수 신흥국은 하루하루 투자 자금 유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금 이탈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13일 시장조사업체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에 따르면 이달 들어 신흥국 주식형펀드에서 자금이 순유출됐다. 지난 2월 이후 처음이다. 최근 1주일(5월2~9일) 동안 신흥국 주식형펀드에서 빠져나간 돈만 16억달러(약 1조7000억원)로 지난해 8월 이후 최대다. 자금 유출 영향으로 세계 22개 신흥국의 주요 기업 주가를 바탕으로 산출하는 FTSE 신흥시장지수는 올해 고점이었던 지난 1월 말에 비해 10%가량 떨어졌다.

신흥국 채권시장에서도 자본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 3주 동안 21억달러가 빠져나갔다.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연 3%를 넘는 등 미국 금리 상승이 본격화하면서 투자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경제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신흥국의 통화 가치는 연일 급락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는 올 들어 달러 대비 23.6% 하락했다. 같은 기간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8.7% 떨어졌고, 터키 리라화와 러시아 루블화도 각각 13.9%와 7.5% 내렸다. 최근에는 몇몇 아시아 국가도 통화 가치 하락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태국 바트화, 말레이시아 링깃화 등이 한 달 새 2~3%씩 떨어졌다. 통화 가치 하락세를 진정시키지 못하면 자금 이탈은 더 가속화할 수 밖에 없다.

이 같은 시장 불안의 바탕에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과 시장금리 상승이 자리잡고 있다. 고수익을 노리고 신흥국에 들어간 자금 중 일부가 이탈하면서 현지 통화 가치를 계속 끌어내리고 있다. 동시에 달러화 강세가 이어지면서 신흥국들의 외채 상환 부담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겪고 있거나 경제 펀더멘털이 좋지 않은 나라일수록 위기 가능성은 높을 수밖에 없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신중한 투자자들이 위험한 신흥시장을 떠나기 시작했다”며 신흥시장 위험이 확대될 수 있다고 전했다.
외환보유액 많아도 불안감 여전

신흥국들은 기준금리를 올리고 외환시장에 보유 달러를 내다파는 등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역부족인 모습이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연초부터 외환시장이 불안해지자 지난 3~4월 두 달 동안 페소화 가치 방어를 위해 80억달러어치의 보유 외환을 시장에 풀었다. 아르헨티나 외환보유액의 15%에 달하는 규모다.

하지만 페소화 가치 하락을 막지 못했다. 외환보유액을 쓰고도 통화 가치를 방어하지 못하자 4월 말 이후 페소화는 더 큰 폭으로 떨어졌다. 기준금리를 1주일 동안 연 27.25%에서 40%로 수직 인상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3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외환보유액만으로 신흥국 외환위기를 막을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위기를 막는 방패로서 외환보유액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절대적인 외환보유액이 아무리 많아도 시장 개입 등으로 규모가 줄어드는 추세가 확인되면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만 키우고 시장 안정 효과는 줄어든다는 이유에서다. 로이터는 “시장에서 달러 매수 심리가 강할 때는 외환시장 개입이 별다른 효과 없이 외환보유액만 축내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인도네시아의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말 기준 1249억달러로, 3개월 새 71억달러가 줄었지만 통화 가치 방어에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브라질 중앙은행도 외환시장 개입을 예고했지만 통화 가치 하락을 막지 못하고 있다. 터키도 외환보유액이 지난 2월 이후 30억달러 가까이 감소했다. 국제 금융시장에선 터키 중앙은행이 조만간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필리핀 중앙은행은 지난 10일 2014년 이후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연 3.25%로, 0.25%포인트 올린 데 이어 추가 인상도 검토하고 있다.

위기 확산 가능성 주목

관심은 신흥국 외환시장 불안이 얼마나 더 확대될지에 쏠리고 있다. 아직까지는 1980년대 초반의 남미 외채 위기나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위기 상황은 곧잘 전염되고 예기치 않게 확대된다는 점에서 낙관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변동환율제 도입에다 충분한 외환보유액, 줄어든 경상수지 적자 폭 등을 고려할 때 대다수 신흥국은 과거보다 자금 유출 충격을 잘 버틸 수 있다”고 밝혔다. JP모간은 “신흥국 시장은 최근 하락하면서 저평가 단계에 접어들었고 2분기 선진국 경제성장률이 반등할 것”이라며 “지난 한 달간 신흥국 시장의 급격한 하락은 장기간 약세장의 시작이라기보다는 추가 매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달러 강세와 미국 금리 인상, 국제 유가 상승 등 신흥국 경제에 부담을 주는 요인들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다는 점은 큰 부담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최근 보고서에서 터키, 아르헨티나, 파키스탄, 이집트, 카타르 등 5개국을 미국 등 선진국의 긴축 정책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는 ‘5대 취약국(fragile 5)’으로 꼽았다.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베네수엘라도 고위험국으로 꼽히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올해 만기가 되는 신흥국 채권은 9000억달러가 넘는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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