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현 문화부 기자 hit@hankyung.com

지난 9일 오전 문화체육관광부는 윤미경 전 국립극단 사무국장을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날 오후 갑자기 임명을 보류하더니 다음날 임명을 철회했다. 신임 대표 선임을 보도자료를 통해 알린 지 31시간 만이었다. 문체부는 “개혁적 성향의 인사가 임명돼야 한다는 예술계 의견을 수용해 임명절차를 새롭게 진행할 예정”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밝혔다.

직접적인 이유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조사위)의 의혹 제기였다. 윤 전 사무국장이 블랙리스트 실행에 관여했다는 주장이다. 조사위에 따르면 그는 2015년 문체부 공연전통예술과 지시를 받아 연극 ‘조치원 해문이’ 홍보물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극단과 인물 이름을 삭제했고 광화문 광장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망루의 햄릿’ 온라인 포스터도 지웠다.
문체부는 이런 정황을 몰랐다고 변명하기도 힘들다. 조사위에는 민간 전문가 17명뿐 아니라 문체부 공무원 4명이 참여했고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센터 대표 임명 전날인 지난 8일엔 조사위의 최종 조사결과 발표도 있었다. 국립극단이 그런 행위를 한 사실은 조사위 보고서에도 나와 있다. 문체부는 적어도 국립극단 전 사무국장이 관여됐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했어야 했다. 자신들이 손수 꾸린 조사위가 1년 가까이 힘을 쏟은 최종 결과를 산하기관장 검증에 제대로 이용하지 않은 꼴이 아닌가.

만약 알고도 밀어붙였다면 그 이유를 설명하면 될 일이다. ‘제기된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든지, 사실임에도 해당 인사의 역량과 전문성이 탁월해 임명을 결정했다든지 말이다. 그러나 문체부는 아무런 언급 없이 ‘보류’와 ‘철회’만 신속하게 했다. 고심 끝에 낙점한 산하기관장 인사를 ‘블랙리스트 여론’을 의식해 ‘임명 철회’로 수습하려 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조사위의 문제 제기가 있자, 윤 전 사무국장은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자신의 의혹을 문체부 측에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인사 혼란의 책임 소재를 밝히고 윤 전 사무국장의 개인 명예를 위해 관련 의혹을 검증하는 게 제대로 된 뒷수습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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