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 청구권 도입되면

건강·육아·학업 등 사유 있을 땐
주당 15~30시간 근무 요구 가능

산업계 "대체인력 뽑기 쉽지 않고
적게 일해도 복지 줄지 않아 부담"

당정이 근로자의 근로시간 단축 요구를 법적 권한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은 여성의 경력단절을 제도적으로 막고, 고졸 취업자의 자기계발을 보장하면서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현재 근로시간 단축 청구권은 임신한 직장 여성만 사용할 수 있다. 임신 후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 여성이 신청하면 하루 최대 2시간을 줄여 일할 수 있다. 출산 후 1년 동안 쓸 수 있는 육아 휴직 대신 근로시간 단축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회사 측에 거부권이 있어 신청이 활발하지는 않다는 설명이다.

당정은 근로시간 단축 청구권 도입으로 급여는 줄겠지만 자녀 양육이나 학업, 건강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통상 한국 여성은 20대 중후반에 취업한 뒤 30대에 육아 문제로 퇴직하고, 40~50대에 다시 생업을 위해 취업한다. 올해 3월 여성 고용률은 25~29세가 70.0%이지만 30~34세가 61.4%, 35~39세가 59.4%로 낮아진다.

고용노동부가 부산대에 의뢰한 ‘근로시간 단축청구권 도입을 위한 입법 방안 연구’에서도 직장인의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해선 가족 돌봄과 건강, 은퇴 준비, 학업 또는 직업훈련 등의 사유에 근로시간 단축청구권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네덜란드와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는 단시간 근로를 활성화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대폭 높였다. 네덜란드의 여성 고용률은 71% 수준(2015년 기준)이다. 지난 3월 기준 한국 여성의 고용률(50.3%)보다 20%포인트 가까이 높다. 특별한 사유가 없어도 근로자가 원하면 근로시간을 줄여주는 방식으로 경력 단절을 막았다는 설명이다. 권혁 부산대 교수는 “남성은 ‘전일제’, 여성은 ‘단시간 근로’ 방식의 사회적 분업이 자리잡으면서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당정은 또 일을 하면서 학교에 다니거나 기술을 익히길 원하는 경우에도 근로시간 단축을 보장해줄 방침이다. 고졸 취업생이 ‘선취업·후진학’할 경우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근로시간 단축청구권 제도는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대안 성격도 있다. 4시간 안팎을 일하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알바(아르바이트)’보다 좀 더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지만 근로시간 단축 근로자에 비해 급여 수준이 떨어지고, 기존의 업무 전문성을 살리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능력 있는 직장인의 경력단절 없이 전문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며 “단축 근무에서 전일제로 복귀할 때에도 불이익이 없도록 보장장치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남녀 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엔 55세 이상 직장인이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는 조항도 담긴다. 같은 시간을 일하고 임금이 줄어드는 임금피크제와는 개념이 다르다. 임금이 줄더라도 짧은 시간 근로를 통해 노후 설계를 한발 앞서 할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다.

산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여성의 경력 단절 등은 구조적 문제로, 사회 인프라 확충이 우선돼야 하는 데 그 책임을 기업에 떠넘긴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의 인사담당 임원은 “임금이 줄긴 하지만 노사 관계가 불안한 사업장을 중심으로 노조에서 이 제도를 오·남용하면 노사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며 “추가 인력 고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일손 부족 현상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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