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와 꿀벌
제프 멀건 지음 / 김승진 옮김 / 세종서적 / 500쪽 / 2만원

세계적 혁신 전문가 제프 멀건
자본주의 본질·양면성 조명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약탈적 성격 부각됐지만
富 창출하는 자본주의 역할 강조

약탈과 창조라는 양면을 지닌 자본주의는 로마신화 속 두 얼굴을 가진 ‘문(門)의 신’ 야누스를 떠올리게 한다. /Getty Images Bank

생산적으로 일하고 많은 이들에게 이득을 주는 존재. 18세기 네덜란드 경제학자 버나드 맨더빌이 《꿀벌의 우화》를 쓴 이후 꿀벌은 자본주의의 밝은 면을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반대편에는 주변을 황폐화시키는 메뚜기가 있다.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메뚜기떼의 약탈적 모습이 자본주의의 또 다른 얼굴이란 얘기다.

신간 《메뚜기와 꿀벌》(원제:The Locust and the Bee)은 이런 자본주의의 양면을 조명한다. 영국 국가과학기술예술기금(NESTA) 대표이자 세계적인 혁신 전문가로 이름난 제프 멀건이 쓴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꿀벌에 힘을 실어주고 메뚜기를 제약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구하려 한다.

그는 먼저 자본주의의 본질부터 파헤친다. 그가 정의하는 자본주의는 ‘교환 가능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측에 보상하는 것이 가장 좋은 자본주의다. 열심히 일하는 부지런한 꿀벌 같은 사람, 혁신하는 사람에게 걸맞게 대우해주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약탈적인 봉건군주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저자는 이런 측면을 두고 ‘자본주의가 도덕적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핵심 원천’이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자본주의가 가치를 만들어 내는 쪽에만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탈취하는 자에게도 보상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약탈’이 자본주의 경제의 일부가 됐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특히 금융산업에서 “실질적으로 가치를 창출하기보다 정보와 권력의 비대칭을 이용해 가치를 탈취하는 활동이 상당 부분 있다”고 강조한다. 생산과 혁신이 아니라 투자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것이 손쉬워지면서 약탈적 금융의 비중은 더 커졌다는 지적이다.

“사회를 위대하게 만들어주는 바로 그 요인이 사회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경고는 자본주의에도 적용된다. 과거 군주제에서는 과도한 군사적 지출이, 종교 권력이 하늘을 찌를 때는 넘치는 위선이 기존 체제의 발목을 잡았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원동력이 됐던 과감한 위험 감수와 레버리지, 낙관주의와 탐욕이 붕괴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책이 전통적인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고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형태로 변신할 것이란 점을 강조한다. 자본을 가진 주체들이 앞으로는 상업적인 요소뿐 아니라 사회적·환경적 목적을 고려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경제의 중심이 되는 산업도 자동차 철강 금융 서비스가 아니라 건강과 교육, 돌봄과 녹색산업 분야로 옮겨가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물건을 소유하고 물질적 혜택을 누리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한다. 더 절실한 욕구는 사랑과 우정, 돌봄과 더 좋은 환경, 건강한 신체와 정신에 대한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그것의 지속적인 ‘유지’에 기반한 경제가 핵심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미래의 부를 만드는 ‘꿀벌’을 잘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도 필요하다. 창조적인 프로젝트를 내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지원하거나 혁신을 위한 공모 대회, 성장하는 기업을 위한 펀드 조성에 나설 수도 있다. 저자는 한국을 비롯해 핀란드와 이스라엘, 독일 등 이 같은 미래 투자를 늘리고 있는 국가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500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이지만 자본주의의 기원과 발달 과정, 그간의 비판과 대안들, 진화의 가능성과 방향까지 구조를 잘 짜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다. 이념의 틀에 현실을 가둬놓지 않고 경제 성장과 사회 발전의 방향을 모색한 점도 눈길을 끈다. 자본주의 비판자들은 자본주의가 가진 창조성에 눈을 감고 옹호자들은 약탈적인 가치 파괴 행위를 모른 체하는 현실에서 균형을 잡으려 한 노력도 엿보인다.

저자는 “메뚜기가 여전히 존재하고 언제나 그랬듯이 꿀벌은 수많은 싸움에서 수세에 몰려 있는 처지”라며 “어쩌면 이것이 자연 상태일지도 모른다”고 인정한다. 그럼에도 “이 관계는 역전될 수 있으며 그런 세상을 위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런 위기에 대한 인식은 미래에 대한 경고이자 희망의 신호일 수 있다는 의미다. 저자가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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