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시행 앞두고 일선 기업 혼란 극심
디테일 놓치면 좋은 명분도 빛 잃어

안재석 산업부 차장

대기업 계열사의 A사장은 얼마 전 자신의 운전기사를 사무실로 불렀다. “앞으로 토요일과 일요일은 집에서 쉬세요.” 오는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 시행되는 근로시간 단축이 이유였다. 주말에도 근무하면 ‘주 52시간’ 규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운전기사는 하소연했다. “집에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둘이나 있습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기업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운전기사는 주말 또는 휴일에 출근하면 ‘특근비’ 등의 명목으로 추가 급여를 받는다. 식사비 등으로 받는 팁도 쏠쏠하다. 앞으로 그런 부가 수입이 사라진다.

한동안 고민하던 운전기사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주말에 대리운전을 뛰어도 될까요?” A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달 뒤면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다. 근로시간을 현재의 최장 68시간에서 52시간(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명분만 보면 흠잡을 데 없다. 유독 근로시간이 긴 한국이다. ‘저녁이 있는 삶’에 토를 달긴 어렵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 접목되는 순간 사정은 달라진다. 복잡한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A사장은 해외 공사에도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돌관공사’라고 들어보셨어요? 한국 기업 특유의 장점이었는데 이제 어렵게 됐으니….” 돌관공사의 사전적 의미는 ‘장비와 인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한달음에 해내는 공사’다. 건설과 플랜트 등의 업종은 스케줄 관리가 최우선이다. 공사 기한을 못 맞추면 늦은 만큼 배상금을 물어야 하고 신뢰도 잃는다. “인력을 늘리면 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진 않아요. 근로시간이 짧아지면 기존 근로자들 월급도 줄어들고….”
A사장의 푸념은 그 뒤로도 한참이나 이어졌다. “최근 임원 회의에서 사장 이상 고위직의 운전기사를 두 명으로 하는 건 어떻겠느냐는 논의가 있었어요. 머리를 맞댈 중대사가 한둘이 아닌데 이런 일로 시간을 보내다니요.”

그나마 운전기사와 해외 공사 문제는 복잡하지 않은 편이다.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으면 그만이다. 이보다 모호한 사안이 훨씬 많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어디까지를 근로시간으로 볼 것이냐가 가장 큰 골칫거리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이라도 업무는 천차만별이다. 사무실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업무도 적지 않다.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밤늦게까지 술을 마셔야 하는 직장인들도 있다. 현실은 무 자르듯 단칼에 잘리지 않는다.

근로자에 대한 정의마저 제각각이다. B회사 영업파트 직원의 말. “며칠 전 인사팀에 임원도 근로시간 단축 대상인지 물어봤더니 해당사항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어요. 그런데 사석에서 만난 사내 변호사 말은 달랐어요. 해당 임원이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등을 하면 회사 측이 질 가능성이 크다고 하더라고요.”

2016년 9월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이 시행됐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시행 주무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에 한 달 만에 수천 건의 문의가 쏟아졌지만 권익위는 제때 답을 내놓지 못했다. ‘대답 없는 권익위’라는 제목의 기사가 연일 지면을 채우기도 했다.

근대 건축의 개척자로 불리는 독일의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는 “신은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이 말은 나중에 “악마는 디테일에 깃든다”는 말로 진화했다. 세부사항, 즉 디테일에 숨어 있는 신과 악마를 외면하면 결과는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정책도 큰 틀에선 마찬가지 경로를 밟을 개연성이 크다. 게도 구럭도 다 잃고 찬란한 명분만 남게 된다. 명분만으론 삶이 윤택해지지 않는다는 교훈과 함께.

yagoo@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