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안 된 '週 52시간 근무'…산업현장 '우왕좌왕'

획일적 규제에 기업 아우성

근로시간 단축 시행되면
인력 10~30% 늘려야 하는데
해고 어려워 쉽게 결정 못해

대기업·인터넷업계 등
"R&D 경쟁력 하락 걱정"

양대 노총은 강경 목소리
"임금 삭감 못 받아들인다"

“대형 플랜트 공사의 실적은 공기(工期·공사기간)에 좌우됩니다. 한국 정부가 주 52시간 근로제를 시행했다고 해서 해외 발주처에 추가 비용을 청구할 수 있을까요?”

지난 4일 울산 석유화학단지에서 만난 국내 대형 건설사의 A부사장은 완공을 7개월여 앞둔 대형 플랜트를 바라보며 ‘한숨’부터 쉬었다. 지난 2년 동안 임직원 400명이 휴일도 없이 달라붙어 완공을 눈앞에 둔 프로젝트다. 오는 7월 주 52시간 제도가 시행되면 추가 인력이 필요하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게 A부사장의 걱정이다. 그는 “추가 인건비 부담은 차치하더라도 당장 채용할 숙련공도 드물다”고 하소연했다.

◆획일적인 규제로 속 터지는 현장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이 50여 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생산 현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제조 현장에서 만난 기업인들은 업종 특성이나 개별 기업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규제가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런 가운데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양대 노총은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임금 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을 관철하겠다”며 고강도 투쟁을 예고해 기업들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한 1차 협력사는 연매출 3000억원에 영업이익률 15% 안팎의 견실한 중견기업이다. 지난 3일 경기 판교 사옥에서 만난 이 회사 대표는 “주 52시간 근로제도가 시행되면 보수적으로 따져도 10~15%가량의 인력이 더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며 “하지만 불경기가 왔을 때 해고가 쉽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추가로 인력을 채용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 회사 직원은 총 350명. 회사 측은 당분간 시간을 벌기 위해 연구개발(R&D) 센터와 생산법인으로 회사를 분할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종업원 300인 미만 사업장은 2020년부터 단계적으로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삼성전자 1차 협력사 모임인 협성회 소속 중소·중견기업은 대부분 우리 회사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경기 이천에 있는 SK하이닉스의 한 협력사는 “최근 노조 대표로부터 정부에 신고하지 않을 테니 현행 맞교대 근무를 유지하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평균 연봉이 약 1000만원 줄어들 것이라는 회사 측 설명을 들은 노조원들이 자체 회의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가족 같은 직원들의 요청을 들어주고 싶지만 법을 위반할 수는 없어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주 52시간 정착에 최소 3년”

대기업들도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매년 신제품을 내놔야 하는 반도체, 가전, 휴대폰 등 정보기술(IT)업계 R&D 부서에는 근로시간 단축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삼성전자나 LG전자도 내부적으로 신제품 출시 시기를 늘리는 등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제품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고심하고 있다. 단기 집중근무가 흔한 게임업계와 인터넷업계에서도 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되면 기업 경쟁력이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10월부터 주 52시간 제도를 6개월간 시범 시행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한 경영진은 “제도가 제대로 안착되는 데 최소 3년은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원 운전기사나 비서 등 장시간 근무가 많은 일부 업종에선 주 52시간 근로제로 고용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미 외국계 IT기업이나 투자은행(IB)업계에선 오후 6시 이후 회사에 배속된 운전기사를 일괄 퇴근시키는 곳이 등장했다. 저녁시간엔 임원들이 회사 비용(법인카드)으로 택시를 이용한다는 설명이다. 국내 대기업들도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해 임원 운전기사를 최소화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생산 현장에선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임금 손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하부영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은 지난 3일 열린 임금단체협약 교섭 상견례에서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따라 임금이 줄어들 우려가 있기 때문에 성과급 등으로 이를 보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금속노조도 지난 3월 ‘사측에 임금 삭감 없이 주 52시간제를 시행하도록 요구하라’는 지침을 내놨다.

박상익/박상용/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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